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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l 22. 2024

우리집 작은 내방은 하늘 위 퍼스트 클래스 보다 좋다.

일상을 여행처럼 상상하기

  내일이면 아이가 로마행 비행기를 탄다. 아빠와 단둘이 하는 여행이라 설레이면서도 엄마와 떨어질 생각에 더 설레여 하는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이른 아침 나가야 하는 일정이라 일찍 자라고 이불 덮어주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잠들때까지 옆에 있어달라며 부탁한다. 사춘기 호르몬 폭발할 때는 남이면 좋겠다 싶은데 이럴 때 보면 아직 아기같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엄마랑 같이 잘까?"

"엄마 나 여행 갈 동안 비행기에서 모하지?"

내일 비행기 타고 갈 생각에 잠이 안오는지 목소리가 동동 떠 있다.

"비행기 안에서 글쎄…기내식 먹고 책도 보고 닌텐도 하고 좀 쉬면 되지. 이코노미라 좌석 좁아서 옆사람 폐끼치지 않게 조심하고."

"엄마는 퍼스트 클래스 타봤어? 거기는 누워서 갈 수 있다고 아빠가 돈 모아서 엄마 태워준데."

"아빠 마음이 고맙다. 엄마 퍼스트 클래스 못타봤어. 한번 비행하는데 1500만원 이렇게 하는데 너무 비싸!"

"퍼스트 클래스 나도 타보고 싶다."

"퍼스트 클래스라도 우리 지금 누워있는 침대시트보다 작고, 우리 누워있는 이 방보다도 작고 또 원하는 음식 뚝딱 먹을 수 있는 주방도 없고 개인 화장실도 작지."

"오! 그럼 내방이 퍼스트 클래스보다 훨씬 좋다."

"그렇지! 여긴 게다가 공짜잖아. 상상하면 되. 지금 우리 누워 있는 이 방이 하늘위를 날고 있다고 말야."

"와~ 엄마 내방에서 자는데 왠지 플렉스 느낌 들고 기분이 좋은데 키키킥."

단순하고 귀여운 녀석. 설레여서 이러쿵 저러쿵 수다떨다 순식간에 자는방을 퍼스트클래스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재워서 나왔다. 역시 난 멘트장인이야.





  여행하며 설레임보다 여행전 설레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사실 여행가면 첫 날은 이동하는 동안 피곤해서 체력 후달리고 잠자리 바뀌어서 잠 설치면 체력이 훅 떨어져서 힘들다. 힘들면 짜증나고 그러다보면 신경질나고 옆사람과 다투고 여행 첫날은 항상 엉망이다. 그러다 여행하며 현지에서 좀 익숙해질 만 하면 집에 올 시간이 다가온다. 아쉽고 또 오고 싶은 마음에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더더더 좋은것은 여행후에 집에 돌아온 순간이다.  집은 여행 출발 전과 다름없는데 편안한 나의 공간에 들어서면 마음이 탁 놓이고 익숙한 내 침대가 5성급 호텔 구스보다 더 좋게 느껴진다. 이 맛에 여행하지! 이쯤되면 집이 좋아지려고 여행하는 것인가 싶다.



20대 중반 친구들과 이집트 여행을 한달 여정으로 떠났었다. 대학동기 여자 세명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자며 과감하게 자유여행으로 첫 숙소만 예약 후 무작정 떠났다. 정말 신기하게 첫 숙소에서 다음 숙소를 소개해주고 다음 숙소에서 또 다른 여행지 숙소로 연결되는 릴레이 패키지 처럼 물흐르듯 여행을 즐겼다. 세명 다 MBTI에서 P성향이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러며 즐겨서 가능한 여행일정이다.


카이로 일정을 마치고 룩소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야간기차를 타야했다. 야간 기차라고 했지만 침대시트가 아니라 의자를 젖혀 누워서 갈 수 있는 좌석이었다. 그 때 나의 좌석이 기차 출입칸의 가장 바깥쪽 좌석이라 마음만 먹으면 출입문에서 괴한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노출될 것만 같았다. 가운데 앉고 싶어서 자리 바꾸자고 하니 싫다고 해서 그냥 앉아갔던 기억이 난다.



자다깨다 거의 뜬눈으로 야간 기차를 타며 어찌나 힘들었는지 아직도 불면증에 잠이 안오는 날이면 룩소르행 야간 기차를 떠올린다. 차라리 잠들었으면 좋겠는데 잠은 안오지 좌석은 불편하지 출입문에서 누군가 들어올까봐 무섭지 모든 불면의 요소는 다 갖췄었다. 신기하게 두명의 친구들은 쿨쿨 잘 자서 나도 안쪽좌석에 앉았으면 잘 잤을텐데 이것들이 나를 보디가드로 세웠다며 아침에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


가운데 좌석에 앉은 친구가 오후부터 벅벅 긁기 시작하더니 등어리를 봐달라고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한줄로 줄맞춰 여러방 무언가에 물려있었다. 물린 모양이 이상해서 약국에 가보니 벼룩에 물린것 같다고 했다. 좌석 바꾸지 않길 잘했다. 역시 사람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불면과 벼룩의 추억을 지닌 룩소르행 야간기차 바깥좌석은 지금도 잠안올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 도구이다.



아늑한 내방 침대는 최상급 하늘위 퍼스트 클래스보다 좋고 괴한이 당장이라도 들어와 위협할 것 같은 룩소르행 야간기차 좌석보다 좋으니 천상천하 유아독ZONE 지구상에서 제일 좋다. 아들과 아빠 둘만의 로마여행에서 뭘 느끼고 뭘 얻어올 지 너무나 기대된다. 편안한 내방의 고마움을 일깨워 주기 위해 또, 지금 여행가신 저 두분이 우리집 돈 다 써버리기전에 나도 조만간 고행, 아니 여행을 떠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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