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애프터(A.F.T.ER)의 비상
밴드 결성 후 우리는 어떤 장르의 음악으로 가요계에 승부를 수를 던질지 매일 밤 회의를 했다.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걸 매니저가 네다섯 번은 치워야 회의가 끝이 날 정도로 밤샘을 밥 먹도록 했다.
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보스’였다. 그만큼 내 음악에 있어선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로 정평이 나있었다. 우리는 일사천리로 곡 작업을 했다. 연주 실력이야 멤버들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지만 신디사이저 파트와 함께 메인보컬을 해야 하는 내실력이 부족해 큰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무대에서 MR을 틀고 립싱크와 손싱크를 하면 모를까, 라이브 합주는 힘들 것이 예상되었다. 난 과거 유재하 가요제에서 만난 버클리 음대 출신 키보디스트를 영입하기로 했다. 그 역시 키보드 연주와 작곡, 편곡 실력이 뛰어난 인재였기에 그를 세션맨이 아닌 밴드 에프터의 정식 멤버로 영입했다. 우리는 5인조 아트록 밴드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멤버들과의 작업은 너무 재밌었다. 이미 결혼을 해서 처 자식이 있었던 기타리스트 형은 가족을 위해 칼 퇴근을 하면서도 심야 작업만은 제발 좀 빼달라 통 사정하며 밴드의 합주를 빠지기 일쑤였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내가 곡의 멜로디 라인을 만들면 각자의 파트 영역에서 바로바로 작업을 진행, 완벽한 아트록 장르의 곡들을 만들어냈다. 멤버들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우리의 앨범은 한곡 한곡 채워졌고 나는 이 공동 작업한 곡들을 어디에 가서 마스터링을 할까 고민했다.
“그래, 영국으로 가서 작업을 하자.”
사장님께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 왈.
“니 죽고 싶나, 거가 얼마나 비싼 줄 아나? 거기다 쌩 브라까지 쓰겠다고?”
애프터 1집 앨범이 완성되자 사장님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일본의 마스터링 업체에 가라 말했다. 사실, 난 영국에 가는 것은 큰 기대도 안 했다. 단지 국내에서 마스터링을 하면 록음악도 하우스 비트의 댄스 곡 같이 만들어져서 나왔기에 국내에서는 절대 마스터링을 할 수 없단 맘뿐이었다.
음악적 코드가 잘 맞는 미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키보디스트 멤버와 절친이 되었다. 밴드의 원년 멤버이자 드럼 치는 친구 준철이 보다 더 친하게 되어 우리는 음반 마스터링을 하러 일본에 함께 가게 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밤이면 밤마다 음악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 퀸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여 담배를 배웠다는 그는 연신 담배를 태우며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이야기했고 나도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마스터링을 끝내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멤버들은 우리를 반겼지만 친구 준철이는 좀 삐져있었다. 원년 멤버인 자신과 함께 일본에 가지 않고 새로운 멤버와 일본에 다녀온 내가 못 마땅했는지 이후 우리는 이상한 기싸움을 하게 된다.
얼마 후 레코드 샵에는 그룹 애프터의 앨범이 깔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출시를 앞두고 쇼케이스를 진행했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기존 팬들은 내가 록밴드로 돌아왔다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했지만 앨범의 곡들을 모두 들어본 팬들의 반응은 대중성과 실험성을 겸비한 아트록 성향의 곡들에 찬사를 보냈다.
이례적으로 방송사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비주류 음악을 하는 우리 밴드를 섭외하려 난리가 났고 일순간에 가요 톱 10에 진입, 앨범 발매 한 달 만에 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우리는 방송 스케줄로 더욱 바빠졌다고 무명이나 다름없던 멤버들은 나와 함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솔로 가수 하다 록밴드로 돌아오면 망한다는 사장님과 주변 평론가들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며 우리는 전국 투어 콘서트에 돌입했다.
- 마스터링(Mastering)이란?
음악을 마스터링 하는 것은 음원의 믹스를 가져와 최종적으로 특정한 음향 특성을 향상 및 강조하는 작업을 말한다
레벨 조절, 스테레오 개선 적용, 클릭 및 팝 소리 모니터링 등 청취자의 음악 감상을 위한 최적의 모든 환경이 포함되며 다양한 형식과 시스템에서 일관된 재생을 위해 최적화된 깨끗하고 정돈된 클린 사운드가 결과물로 나온다.
- 사장님의 말 중 ‘쌩브라’는?
브라스는 금관악기를 지칭하는 영단어다. 이를 근거로 사장님의 말은 “금관악기를 라이브로 쓴다고?”라고 해석된다.
- 표지 사진은 올림픽 공원 행사 무대에서 ‘보스’ 라 불리던 작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