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어지럼증이 심해져서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어지러웠고 구토가 나왔다. 20대 후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증상이 있었다. 당시 너무 어지러워 병원에 가니 이석증이라 했었고 과거 경험상 이번에도 이석증이라 확신했다.
큰 형의 생일이라서 형집에 가기로 한 것도 취소하고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침대에 누워있으니 지난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펜을 들 힘조차 없었지만 이런 내 감정을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화장실과 내방을 오가며 구토를 하면서도 프린터기에 있던 a4용지 몇 장을 꺼내 펜으로 글을 적어 내려갔다.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분명 내 방 앞에서 말씀을 하시는데 이상하다.
“너 아픈데 외출해서 미안하다, 네 형 생일이니 축하만 해주고 바로 올게, 철이는 내가 데리고 다녀오마”
철이는 내 아들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셨고 이제 집에는 나 혼자 뿐이다. 적막함이 흐르는 집에서 어지럼증과 구토를 참으며 글을 써 내려갔다.
‘잘 지내지?
난 우리의 추억이 생각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네 곁엔 누가 있니?
내가 채우지 못한 그 빈자리를 다 채워줄 만큼
그가 널 사랑해 주니?
네 옆엔 그가 있겠지만
내 마지막 부탁 하나 들어줄래?
제발, 날 잊지 말아 줘….’
글을 마저 다 쓰지도 못하고 또다시 구토가 심해져 화장실로 가야 했다. 순간 입에선 토사물과 함께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몸을 주체하지 못하며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내 몸은 굳어진 상태로 전혀 꼼짝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점점 뿌였게 변한다. 꼭 안개 낀 장충단 공원처럼 모든 게 잘 보이지 않는다. 희뿌연 안개와 함께 내 의식도 점차 사라졌다.
“이대로 죽은 것인가?”
얼마가 지났을까? 눈을 뜨자 아내, 희원이가 보였다. 문병 왔다고 말하는 민머리 가이드 녀석도 보인다. 분명 두 사람은 일본에 있다고 말했었는데 이상했다. 울고 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그리고 누워있는 한 사람, 너무 초췌해서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환자복을 입고 산소 호흡기를 낀 그는 바로 나였다.
내가 나를 보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귀신들처럼 하늘을 날거나 붕 뜬 기분도 아니었다. 희원이와 민머리 녀석이 어머니께 인사를 하며 병실 밖으로 나간다. 둘을 따라가 봤다. 두 사람은 내 병실 문을 나가자마자 서로 아이컨텍을 하며 웃고 있다.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났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둘의 대화가 정말 가관이다.
“저 새끼 노래 저작권은 어떻게 한데? 히트곡들이 있으니 솔솔 하지 않아?”
민머리 녀석의 말에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아내
“아마, 애 아빠 죽었으니 시어머니가 철이한테 물려줄 거야.”
뭐라고? 내가 죽었다고? 너무 놀라서 병실로 재빨리 시선을 옮겼다. 정말 내가 사망했다면서 의사가 내 얼굴을 이불로 덥고 있다. 의사는 말했다.
“환자의 경우, 골든 타임을 지켰다면 살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너무 늦게 발견되어 뇌경색으로 사망을 했습니다.”
의사는 어머니께 내 사인을 설명하고 자리를 떴다. 내 차가워진 손을 잡고 우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지금 나는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내의 예상 대로 어머니는 내 모든 곡들의 저작권을 아들 철이의 명의로 이전시키셨다. 애 엄마가 바람피운 사실을 전혀 모르시던 어머니는 혼자된 며느리를 안쓰럽게 여기시며 철이 마저도 그녀에게 키우라 양육권도 포기하셨다.
이렇게 내가 죽다니. 구천을 떠도는 귀신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내가 그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황당하고 또 황당했다. 나를 추모한다며 몇몇 가수들이 뭉쳐 아내를 찾아와 저작권 관련 논의를 한다. 그들은 아내에게 추모 공연을 추진한다고 했다. 내가 죽기 전 종이에 적었던 글을 어머니에게 받아 가사로 만들어 추모 곡도 만들었다 했다. 하지만 추모공연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내 노래들의 저작권료를 비싸게 부르며 딜을 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계산적인 행동을 의아해하는 몇몇 동료 가수들은 얼굴까지 붉어졌다. 그들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이자 갑자기 아내는 울음을 터트린다.
“도대체 왜 우는 것일까?”
어이없는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났다. 결국 음원 저작권 금액 문제로 추모 공연이 무산되었다. 돈 좀 벌겠다 싶었는데 공연이 무산되자 화가 난 아내가 내 유품들을 모두 정리한다. 어머니는 호림이 친구 준철이가 내 물건들을 보관해 주겠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언질 하셨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아내는 내 사진과 초상화를 비롯 내 온기와 손때가 묻은 모든 것들을 준철의 건물에 가져다 놓았다. 정확히는 차에 실어다 그곳에 버렸다. 살아생전 준철이와는 그렇게 싸웠는데 준철이는 오히려 자신의 자가 건물 맨 위층을 비워놓고 내 유품 보관소를 별도로 마련하곤 내 오랜 팬들과 친구들이 찾아오면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며 나를 추억해 줬다.
- 제목은 90's 인기그룹 피노키오의 노래 가사에서 착안했고 부제는 이문열작가의 책 제목에서 착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