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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림 Oct 25. 2024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아내의 음원 저작권 사용 횡포는 계속되었다. 독점권을 가지고 후배들이 리메이크를 하겠다며 찾아와도 그들을 전혀 만나주지 않았고 내 음원을 사용, 리메이크할 수 있는 조건만 서신 통보했다. 서신의 내용은 이랬다. 고인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불라 불라~  통보 서식에는 나를 위한다는 명목이 잔뜩 적혀 있었지만 사실상 내용의 요지는 간단했다.     


“리메이크 앨범 발매 후 팔린 만큼 그 수익을 전부 유족에게 돌려 달라”     


심지어 밴드 애프터를 함께 결성한 준철이 마저도 자신이 만든 곡의 리메이크권을 주장했지만 창립 멤버나 다름없는 준철이에게도 아내는 내용증명을 보내 고소하겠다 협박했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난 이미 죽었다. 속상해서 술도 마실 수 없는 처지였다. 나를 두 번 죽이는 그녀를 보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어지러움과 구토가 일었다. 이제 진짜 죽는 것인가?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져왔고 난 정신을 잃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이 떠졌다. 어디선가 모나미 볼펜이 날아와 내 몸에 맞고 땅에 떨어졌다. “쫙!” 소리와 함께 책상을 강타하는 둔기의 섬찟한 소리가 실내를 울리며 내 귓가를 때린다.     


“야 인마! 여기 어딘지 알아!! 죽은 사람도 살리는 강력반이야!!!”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욕설에 정신을 번쩍 들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나는 이미 죽은 게 아니었나? 그럼 아들 철이는? 아내는 뭐란 말인가?”     


순간 책상 앞에 있는 회전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초췌하고 메마른 모습이 아닌 아주 엣띤 소년의 얼굴이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잡혀 들어왔던 경찰서다.


“너희 친구들 중에 나쁜 짓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있으면 여기에 모두 적어! 볼펜 빨리 안 집어!!”  

  

설마, 내가 보인다고? 경찰의 호통에 어리둥절해하며 내 앞에 떨어져 있는 모나미 볼펜을 집어 들었다. 볼펜의 각진 플라스틱 촉감이 느껴진다.     


“죽었던 내가 환생했단 말인가?

  아니면 시간 여행자처럼 과거로 돌아온 건가?” 

    

경찰의 구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협박이나 구타에도 거짓 진술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곤 말했다.


“이렇게 행동하시면 법에 저촉되는 거 아시죠? ‘무죄추정의 원칙’도 모르시나요?”     


나의 당돌함에 추궁하던 경찰은 들었던 경찰봉으로 나를 때리려는 포즈를 취하다 땅에 던져버린다. 옆에 있던 경찰도 이제 그만 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내 행동거지를 보고 있던 친구 준철이 역시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다. (앗! 이건 뭐지? 이 친구가 준철이었어????)

  

“에이! 독한 새끼들!! 꺼져!!!”     


그들은 못 이기는 척, 우리를 다시 경찰서 유치장으로 보냈다. 구타로 인해 몸은 아프고 힘은 들었지만 준철이와 나는 유치장에서 대기를 하다가 구치소에서 기소유예 판결을 받고 2주 만에 출소해서 다니던 고등학교로 복귀할 수 있었다. 믈론, 학교에서도 우리를 퇴학처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하룻밤의 꿈같았다.”     


경찰서에서 구타를 당해 잠시 눈을 감고 떴을 뿐인데 기나긴 인생사가 펼쳐졌고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았다. 혹, 이 모든 일이 갑작스러운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해 내가 혼절한 사이 뇌가 만들어낸 환영일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준철이는 얼마 뒤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뭐… 그 준철이가 이 준철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둘의 인생이 변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준철이와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회개하고 싶었다. 녀석은 드럼을 치며 찬양단에서 봉사했고 나 역시 찬양단에서 활동했다. 근데 준철이가 찬양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장난이 아니다. 꼭 내가 녀석과 함께 있으면 단원 여자 친구들이 물어온다.     


“너, 준철이 친구지? 나 소개 좀 시켜줘라…”     


꼭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데자뷔를 느끼며 준철에게 강한 질투심이 일었지만 이제 절대 속 좁게 행동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매 순간 열심히 살자는 다짐을 한다.     


“뭐, 내가 주인공이 아니면 어떠리?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행복인데… 이제 밴드나 다시 한번 해볼까? (웃음)”     


끝.    


- 사족[蛇足] -
 

모든 이들은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매 순간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주는 결과가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정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내 속에 희망을 품고, 다양한 실패 속에서도 배움을 찾으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짧은 인생 여정은 분명 신이 주신 아름답고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짜 끝.




- 이번 쳅터의 제목은 90's 인기그룹 여행스케치의 노래 가사에서 착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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