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준철이는 음악을 그만두고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설립, 큰 부자가 되었다.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서 제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과거의 경험을 잘 살려 창업을 했다.
그를 다시 보니 정말 많이 늙었다. 머리는 염색을 안 해서인지 백발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대면 대면 했지만 같은 밴드를 할 땐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그래도 이제는 지난 세월의 고생을 공감해 주는 듯 보였다. 그가 말했다.
“그간 네 소식,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는 내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첨엔 네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며 쌤통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친구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왜? 그때 너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의 고해성사 같은 말들을 들으며 지난 세월 힘들게 악전고투하며 꿈을 이뤘는데 매사 감사하지 못하고 속 좁게 행동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며왔다. 준철이는 작업보단 소주를 먼저 한잔 하자면서 자신의 동네에 있는 횟집에 나를 데려갔다.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곤 녀석이 갑자기 물었다.
호림아, 그때 그분 누구지? 라디오 DJ 하시던 그분? 잘 지내시니?
맞다, 나도 잊었던 그를 준철이가 생각했다. 내게 멘토와도 같았던 김병장… 그가 공중파 라디오 DJ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했지만 그간 사는 게 바빠서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사실, 그에게 연락이 왔었지만 내가 사는 게 변변찮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간다. 신호음 속에 내가 어려울 때마다 호의를 베풀던 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잠시 뒤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사랑하는 김병장님!”
그러나 전화 속 목소리는 김병장이 아닌 낯선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김병장은 세상에 없다 말했다. 얼마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고 그의 아내는 말했다. 믿을 수가 없었고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횟집에서 먹던 모든 음식을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집이다. 그날 준철이가 내 토사물도 다 치우고 엄청 고생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고 다니냐? 너 씻기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니?”
창피했다. 늙은 노모를 고생시켜서 미안하단 생각보단 술에 취해 더러워진 내 알몸을 모두 어머니께 보였다고 생각하니 수치심까지 느껴졌다. 그리곤 물었다.
“어머니, 애 엄마는 어디 갔어요?”
어제 네가 출근하자마자 아이를 맡기고 외출하더니 아직도 안 들어왔다며,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녀는 또 외박을 했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된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또 술을 마셨다. 내가 어렵고 외로울 때마다 나를 도와주던 김병장님의 죽음과 갑작스러운 아내의 행방불명은 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마스터링 작업도 하러 가지 않고 준철이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술만 마셨고 끊었던 담배도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
원(one) 레드 담배 한 까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데 전화가 온다. 오랜만에 일본에 있는 민머리 녀석의 전화다. 녀석은 나에게 아내를 소개해준 인물이다. 일본에 마스터링을 하러 가면서 알게 되어 유학시절까지 호형호제하며 지낸 사이지만 결혼식 이후엔 서로 교류가 전혀 없었다.
“형님~ 잘 지내시죠?”
잘 지낸다 인마!(웃음)라고 답하자 녀석은 언제 양복 한 벌을 해줄 거냐면서 너스레를 떤다. 내 결혼식 당일 눈물을 훔치는 녀석을 보며 한국에선 중매를 잘하면 양복이 한벌이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곤 나에게 묻는다.
“형수님, 아니 희원이 잘 지내죠?”
지들끼리 먼저 알고 지낸 사이지만 내 아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얼마간 정적이 흐르곤 녀석이 말을 했다.
“형님, 저 지금 희원이랑 함께 있어요, 일본에.”
무슨 개소리라며 소리쳤지만 녀석은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자신이 먼저 좋아했던 희원이를 형님이 가로챘고 결혼식 날에도 자신이 슬퍼서 우는데 양복을 사주겠다며 자신을 조롱했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국에서 인기 좀 있다고 술 만 취하면 내게 왜 전화를 했냐며, 희원이를 사랑하는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ばかやろう!”
“ばかやろう!”
연신 일본어로 욕을 해댄다. 그리곤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한국에 잠시 놀러 갔는데 희원이에게 연락하자 자신을 만나러 나왔고 이후 함께 일본에 왔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패닉상태가 되었다.
일본에 갔다는 아내는 그 어떤 연락도 되지 않았다. 어머니께 죄송했고 하나뿐인 아들에게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나를 위로해 줄 김병장님도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 그가 힘들 땐 내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찢어졌다. 나는 절규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제 음악으로도 더 이상 나를 살려낼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도 않았고 술값을 구하기 위해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이런 내 행동에 모두들 안타까워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니 내가 찾아가면 입구에서 지폐 몇 장을 던져주곤 다시는 오지 말라며 소리쳤다.
- 제목은 90's 인기 아이돌 Ref의 노래 가사에서 부제는 80's 인기가수 김범룡의 노래 가사에서 착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