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호림 Oct 23. 2024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그딴 자존심이 뭐라고…

MP3와 플레이어의 대중화에 따른 음반 시장 불황은 심각했다. 발매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내 앨범 전곡이 벌써 MP3 파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팬들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MP3 불법 다운로드 근절을 외쳤고 여론도 애플 뮤직과 같은 음원 제공 사이트에서 공식적인 값을 지불하고 음악을 들어야 한다!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많은 선배 가수들과 힘을 합쳐 투쟁도 불사했지만 불법으로 음악을 다운로드를 한 사람들은 더 이상 CD나 카세트를 사는데 자신의 지갑을 열지 않았다. 특히 바른말하기로 유명한 한 선배가수는 자신의 신규 앨범 속지 Thanks to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뮤지션들이 앨버 속지에 Thanks to를 표기하는 이유는 앨범 제작에 도움을 주거나 감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쓰는 것인데 그는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MP3 파일 음원 불법 다운로드 해서 듣는 씹쎄끼들, 고맙다.’     


전설적인 선배 가수 역시 MP3라는 매체의 등장과 시대적 변화는 이겨낼 수는 없었고 내 앨범도 예상 판매량보다 끔찍한 수치로 판매가 되지 않자 소속사에서는 나를 공식적으로 방출했다. 심지어 받았던 계약금 일부도 돌려줘야 했다.     


살림이 어려워지자 아내는 자주 화를 냈다. 그럴 때면 임신을 해서 시니컬해진 거라 생각했지만 난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난 돈을 벌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과연 저 사람이 저런 제품의 광고를 찍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제품 광고들도 마다치 않고 찍었고 부르기만 하면 아무리 적은 행사비라 준다 해도 어디든 달려가 노래했다.               


내 인지도가 바닥에 떨어지자 이제는 이마저 일이 끊겼다. 나락 가는 나를 보며 내 팬들까지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혀를 끌끌 찼다. 과거 꿈을 이루려고 산전수전 다 겪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졌고 이제 나는 유명인이자 공인이기 때문에 음악 아니면 아무 일도 못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들자 그간 자존심 때문에 연락 못했던 밴드 애프터의 멤버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아직도 상당한 인기를 이어가며 음악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게 누구냐!”      


내 전화에 반가워하는 그들이 나를 불러낸 곳은 바로 예전 밴드 결성을 위해 내가 그들을 불러냈던 특급호텔이었다. 내 어려운 형편을 뻔히 알기에 그들이 나를 꼽주거나 자신들의 인기를 과시하려 그리로 부르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쉬운 건 나였고 음악을 다시 하려면 그 자리에 꼭 나가야 했다.


약속 시간보다 미리 도착해 있던 그들이 나를 반긴다.  

   

“오랜만이다. 네 덕에 이 특급호텔 처음 와봤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자 난 자존심을 다 버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앨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스튜디오가 없다, 좀 도와줘.”     


내 말을 듣곤 흔쾌히 자신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를 사용하라 말하면서 앨범 프로듀싱까지 해 주겠단다. 대신 사용료로 10억만 달라고 한다. 돈 이야기에 내 얼굴이 변하자 농담이라면서 왕년에 최호림 다 죽었다, 놀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심을 보니 내 알량한 내 자존심 때문에 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내가 창피했다. 오래간만에 좋은 음식과 술을 대접받고 집으로 가니 아내의 진통이 심하다. 곧바로 택시를 불러 산부인과로 이동했고 그날 밤 난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이 뻘게졌다. 당장 아내의 병원비와 산후조리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불러주는 행사가 있다면 뭐든 다했다. 한때 백지 수표를 제시받던 내가 단 돈 50만 원만 줘도 경기도에서 먼 지방까지 매니저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음반을 만들고 있는데 업계에선 더 이상 내 음악을 취급하려는 관계자들이 없었다. 이제 어느 기획사에서도 나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창업을 해서 앨범을 유통하기로 했다. 물론 친구들의 도움과 충고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앨범은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최고의 전성기를 함께 만든 그룹 애프터의 멤버들이 함께 해줘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스터링이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귀국하고 국내 업체에서 마스터링 작업을 해보긴 했지만 정말 형편없는 결과물이 나와 쫄딱 망해, 소속사에서 방출까지 되었다 믿고 있는 나에겐 더욱 그랬다. 고심 끝에 한 번 더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곤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긴 신호음이 흐른다. 긴~ 신호음에서 이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는 상대방의 고민이 느껴진다.     


“준철아, 나 호림이다. 마스터링 좀 해줘…”     


한 동안 수화기 너머, 아무 말이 없던 그가 말했다.     


“빨리 와, 이 개새끼야… 왜 이제 전화하냐?”     


눈물이 났다. 그의 호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간 이 전화 한 통을 못해서 이렇게 오랜 친구와 소원해졌던 건가?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심했다. 준철이의 배려로 자신의 다른 작업들 다 캔슬하고 다음날 바로 내 작업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 날은 너무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가를 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없다. 어머니 말로는 아이를 맡기고 잠시 외출을 했다고 한다. 그간 내 벌이가 시원챦고 빚마저 늘어 우리는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어머니 댁으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처지였고 아이는 유치원에 들어간 상태다.


그간 고생 고생해서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아내와는 아직도 대면 대면하다. 그녀는 손님들과 함께 있을 땐 현모양처 같이 행동을 했는데 나와 단둘이 있으면 가까이 오지 말라 버럭버럭 소리까지 질렀다. 그런 그녀가 외박을 했다.


그리곤 아무 말도 없이 다음날 아침에 집에 들어와,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식사를 챙긴다. 행동도 이상했다. 그간 우리는 전형적인 블라인드 부부이자 심지어 나를 본 척도 안 했던 아내인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너무 친절하다. 아내의 외박에 잔뜩 화가 난 어머니를 말렸다. 우리 모자는 그녀의 외박에 대해 어떤 말도 묻지 않았다.



이전 08화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