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나의 오랜 질문이다.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고 오늘 아침에도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것인지 생각했다. 인간은 한자어로 '人'과 '間'의 합성어이다. '人'의 상형문자를 보면 사람 옆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이를 의미하는 '間'은 문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人間이란 인간과 인간의 사이를 혹은 문에 서 있는 인간을 옆에서 본 모양을 그린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꼴을 보고 만든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라 말하면 객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곤충, 공룡, 인간... 뭐 이런 식으로.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내가 인간이란 사실을 잊고 인간을 대상화시킨다. "인간은 단백질 덩어리지" 혹은 "인간은 이기적이지" 등등 인간을 맘껏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현대 과학과 심리학 등이 이런 태도를 갖고 있기에 이런 분야들을 공부하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하게 된 질문이다. 그동안 나는 '사람'이란 말을 일상에선 자주 사용하면서도 글에서는 잘 쓰진 않았다. 당연히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최봉영 샘은 '사람'의 말뜻을 알게 되면 '인간'이란 말을 잘 쓰지 않게 된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사람'은 '살다' '살리다' '삶' 등과 바탕을 함께 하는 말이다. 영어문법식으로 말하면 '살리다'라는 말의 명사형이다. '살리다'는 '살이 되게 하다'는 의미다. '살'은 '살찌다'의 그 '살'이다. 요즘 코로나19로 이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다. 살이 찐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즉 '살'은 음식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저것을 태우거나 녹여서 요리로 만들어 먹으면 살이 된다. 이게 '살리다'이고, 그게 '사람'이다.
'인간'이 꼴을 보고 만든 말이라면 '사람'이란 단어는 일을 보고 만든 말이다. 먹여 살리고, 재워 살리고, 돈을 주어 살리고 등등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이 '사람'이란 말에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라 단어를 쓰면 주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이 사람, 저 사람, 그 사람... 뭐 이런 식으로. 그래서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되나?"라는 질문이 어울린다. 내가 사람이란 사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말을 쓰면 '사람'을 맘껏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윤리와 도덕, 철학, 사회학 등이 어렵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사람학(인문학)은 파고 파도 계속 파게 된다. 그러다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어간다. 그럼 도리어 '사람'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과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꼴을 보고 만든 말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보고 만든 말이다. '나'라는 존재는 인간이자 사람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인간'이란 말이 유용하고, 너와 우리를 주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사람'이란 말이 유용하다. 이 구분을 잘 해야 자만하지 않고, 오만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하는 듯 싶다. '나'를 '사람'으로 보고, '너와 우리'를 '인간'으로 본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를 너무 과신한다. 나를 기준으로 '너와 우리'를 규정하고 통제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 자만과 오만이 넘처난다.
나는 이를 거꾸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인간' '너와 우리=사람'이란 태도를 가지면 자만과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아가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인간'이자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자연에 대한 겸손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싹튼다. 더불어 나에 대한 자존감도 생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인간'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아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제부터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사람이란 무엇인가?" 아니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알려면 사람이 쓰는 '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