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말벗으로 자란 아이
초등학생인 둘째는 학교 내부공사로 9월 중순까지 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나의 늦은 저녁 산책코스에 따라나서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처음에는 아이가 원해서 함께한 산책이었는데 끊임없는 둘째의 재잘 거림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아빠! 아빠는 어렸을 때 공부 잘했었어?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아빠는 전교에서 몇 등 했었다고 하는데. 아빠는 공부 잘했는데 나도 잘하려나?”
딸: “아빠! 학원 선생님이 코가 마비 되었는데~”
나: “뭐? 코가 마비되었어?”
딸: “코로나로 냄새를 맡을 수 없어서”
나: “아. 그건 후각이 마비되었다고 하는 거야”
딸: “맞다. 입은 미각, 손은 촉각, 귀는 청각, 어 하나 더 있었는데”
나: “눈이 있었네. 시각.”
“아빠! 아침에 헬스 하려고 일찍 회사 가는 거야?”라고 하며 나의 하루 일과를 점검하기도 한다.
“아빠! 같은 반 친구 중에 이름이 같은 권 OO 이 있는데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친구야. 나도 그렇게 살아 봤으면 좋겠는데” 다른 삶의 의미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키가 140인데 몸무게가 25 밖에 안돼. 난
먹으면 다 살로 가는데 그 친구는 다 키로 간데”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딸아이는 키가 더 크고 싶은 가 보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같이 산책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대화의 소재도 다양하다.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스럽기도 하다. 아이가 이렇게 커서 나와 대화를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 아빠에게 재잘거리는 아들이었을까? 다소 과묵한 성격이어서 어렸을 때도 그렇게 말이 많은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요즘 나의 아버지이자 딸아이의 할아버지가 손녀를 찾는 일이 부쩍 많아지셨다. 안 보면 보고 싶다고 하신다. 나에게 재잘거렸듯이 할아버지에게도 역시 재잘거리는 딸아이가 마냥 좋으신가 보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주셔서 걱정이지만 난 하루에 하나만 먹으라 아이에게만 당부한다. 사소한 걱정도 있지만 내가 못한 어린 시절의 재잘거림을 대신해주는 딸아이에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딸아이 방학도 이젠 거의 끝이라 함께 저녁 산책하는 시간이 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아이에게 나를 위한 좋은 선물을 주어서 고맙다고 안아주어야겠다.
“고마워! 이쁜 딸. 매일 좋은 선물을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