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모네 집에 놀러 가서 다락방에 두어 번 올라가 본 적이 있었다. 안 쓰는 물건만 던져놓는 용도라서 그 집 식구들은 절대 찾아가지 않는 공간이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다락방을 구경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내게 그곳은 신비로운 장소였다. 켜켜이 쌓인 옛 물건들... 언니들의 묵은 교과서와 오빠의 운동기구, 쿰쿰한 냄새가 나는 낡은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먼지를 덮어쓰고 쌓여 있었다.
키가 작았던 나도 허리를 펴기가 어려웠던 낮은 천장은 다락방의 신비를 더했다. 쭈그리고 난쟁이가 되어 물건들 사이를 조심스레 돌아다니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금세 다시 키가 커지는 앨리스처럼, 조심성 없게 일어나다가 천장에 머리를 쿵! 찧는 것이었다.
먼지는 바닥에만 있지 않다. 오랜 시간 중력을 거슬러 천장에 거꾸로 보이지 않게 쌓여있다. 그만큼이나 가볍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머리를 찧는 순간, 그 아무 것도 아니던 것들은 제국의 군단이 된다. 충격은 멈췄던 중력을 깨우고 주저앉은 벽지가 함께 요동치며, 2차원으로 존재하던 먼지들이 3차원의 공간에 확 털려 흩어진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입자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균일한 밀도를 맞추고, 조화롭게 브라운 운동을 계속한다. 전열을 정비하는 군인들처럼. 이제 다락방은 제어 불가능한 '먼지의 제국'이 된다. 아무도, 아무도 그 먼지들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스스로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앨리스는 그 먼지 속에 우두커니 남겨져 있다.
사라지지 않고 먼지가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없어지지도 적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중력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무한히 잘게 빻아져서 모든 것 위에, 모든 것에 거꾸로, 그리고 모든 틈에 두껍고 투명하게 내려앉는다. 추억은 빛을 잃고 과거는 낡은 냄새를 풍긴다. 먼지는 모든 것을 덮고 위태롭게 존재한다. 아주 작은 충격만으로도 모두를 패배시킬 준비가 되어있다. 패배하지 않으려면, 그들을 깨우지 않으려면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걸쇠를 걸어야 한다. 이모의 다락방처럼.
십 년이건 백 년이건 다락방은 기다린다. 희미한 햇빛과 긴 어둠을 하루처럼 여기며 누군가 그 걸쇠를 열기만 기다린다. 그리고 천진한, 무심한, 아주 작은 진동에도 먼지는 순식간에 깨어나 다락방 안의 앨리스를 에워쌀 것이다.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롭게 할 것이다. 앨리스는 선택해야 한다.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울며 기다릴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이 걷잡을 수 없는 먼지를 견딜 것인지 눈 감을 것인지.
앨리스는...
가만히 앉아서...
그곳의 낡은 것들을 끌어안고...
그 위에 머리를 얹고...
눈을 감는다...
이대로 나도 먼지가 되었으면...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 다락방도
나와 함께 소멸할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