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죄였던 나날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눈을 뜨고 스물여섯 번째 해를 맞이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기에 또 새 해를 살아가야 함에 마음이 복잡하다. 지난 3년은, 불에 태워 무너뜨릴 예정이었던 22층짜리 건물이 예상치 못하게 끝내 무너지지 않아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며 3층이나 더 쌓아야 했던 시간이었달까...
즉흥적인 대처들을 무척 힘들어하는 나에겐 기회나 선물로 여겨지는 시간은 결코 아니었다. 어찌 살아야 하나 막막해하며 방황하다 허송세월만 보내왔다.
나는 나이를 먹으며 성숙해진 성인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선택권 없이 자립한 성인이다.
또래들이 꿈을 이야기하던 나이에 나의 유일한 목표는 독립이었다. 독립인지 도망인지... 이젠 헷갈린다.
인정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지만
나는 아동학대 피해자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둘 중 하나가 죽거나 영원히 분리되어야 끝날 수 있는 악연이다. 현재의 불행을 부모 탓 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의 유통기한은 지난 거 아니냐 묻는다면 나는, 애초에 1층부터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을 20여 년 동안 안전진단 없이 층수만 높여 사이즈만 키운다면 그게 과연 안전한 건물이냐고 묻고 싶다.
엄마는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모두에게 천사 같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학대당했다는 사실은 철저히 숨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땐 다들 그렇게 크는 줄 알았다.
부모가 될 자격이 없었던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나의 잘못이라 하기 어렵지만 무엇을 해도 그의 마음에 들 수 없었던 스스로를 탓했다.
그렇게 나까지 나를 학대하는 시간과 선택들이 누적되어,
집행만 보류된 사형수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약 세 살에서 네 살,
2003년에서 2004년쯤으로,
그때부터 삶은 순탄치 않았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 울거나 투정 부리면
몸 여기저기 맞기 시작했고,
장롱 맨 위칸에 이불들과 함께 한동안 갇히기도 했다.
그가 훈육과 사랑의 매라 믿고 싶어 하던 폭력은
사실 통제와 권력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의 도구는
돌돌 만 문제집이나 포장지에서 시작해
장난감 골프채, 단소, 빗자루,
그리고 진짜 골프채로까지
점점 크기와 위협이 더해졌다.
내가 맞아야 할 이유는
언제나 때리는 사람이 정해주었다.
왼손잡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오른손으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맞아야 했고, 그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맞아야 했다. 시계를 볼 줄 몰라 영어학원 버스를 놓쳤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고,
시험에서 틀린 문제 개수만큼 맞아야 했고,
밥을 골고루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맞아야 했다.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기분일 때마다 이유를 찾아야 했던 건 아닌지 의문도 든다.
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들 대부분은 내가 겪어본 것들이다.
귀에 이명이 한동안 맴돌게 하는 강도의 따귀는 물론이고 한겨울에 베란다에 갇히는 일,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몇 시간씩 내쫓기던 현관문 밖,
눈앞에서 부서지던 애착물건들,
책으로 정수리를 세게 맞아 흐르던 코피,
그리고 마지막에 반드시 따라붙던 말.
“널 사랑하니까,
잘됐으면 해서 때리는 거야.”
나의 엄마라는 사람은
파랗고 까맣게 밤하늘의 은하수 형태로 멍든
나의 팔다리와 손을
하찮다는 듯 내려다보곤 했다.
그리고는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늘 똑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니까 말을 잘 들어야지.”
더 혼란스러웠던 건, 나는 남들이 누리는 세끼 식사, 깨끗한 옷, 사교육, 그리고 생일 땐 생일 파티도 열어주는 등, 충분히 누리며 살았기에 늘 정상적인 가정과 폭력 가정의 경계 위를 오묘하게 오가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잔혹했던 점은
그 폭력이 응급실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나름대로 ‘절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접수된 신고가 없었기에
그는 끝내 사회에서는
가해자의 얼굴을 깔끔히 감춘 채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본인이 굉장히 좋은 부모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렸던 나는 뉴스에 나올 만큼의 폭력만이 학대인 줄 알았다.
그리고 뉴스는 대개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이며 생활고에 시달려 피해 아동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도 못하고 방치하고 폭행하다 피해자가 사망했을 때에만 보도되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자주 생각했다.
"아, 내가 죽어야
엄마는 처벌받는구나..."
그때부터였을 까,
언젠가는 나 스스로 삶을 끝내게 될 날을
상상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게...
삶은 이어가되, 끝은 늘 손이 닿는 곳에 두며 하루를 버티기 시작한 게...
늙어 죽는 것보다 맞아 죽는 게 빠르지 않을까 계산하며 밤을 지새운 게...
그때부터 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아직 죽지만 않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