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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Feb 15. 2024

안 크면 안 되나요?

회사안내서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고 있다.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이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회의할 때나 미팅할 때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글로 정리하는 일이다. 


틈틈이 잘 만들었다는 다른 회사의 안내서도 들여다보는데, 모든 회사의 안내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성장.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라면 빠지지 않고 모두 성장하고 싶다고 한다. 성장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도, 성장하는 인재를 원한다고도 한다. 그래서였나 보다. 내가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없었던 건.

이전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팀장과의 면담시간이었다. 윗사람이니 어려워해야 하는 게 당연했지만 난 그가 어렵지 않았다. 카페에서 호호 웃으며 면담인지 수다인지도 모르게 하나씩 이야기를 해나갔다. 마지막 질문에 이르렀을 때였다. 


“일락님 목표는 뭐예요?”

“저 그냥…지금처럼 낮에는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랑 고양이랑 노는 일상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침묵이 흘렀다. 

“그게 무슨 말이죠?”

내게 되묻는 그의 표정에는 황당함을 넘어 분노가 어려 있었다. 

지금보다 잘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냐고, 우리 회사는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고,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긴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전 지금의 생활을 영위하는 게 좋은데요. 성장이란 말은 저한테 너무 무거워요.”

“음…성장이 아니면 발견은 어때요? 어쨌든 일을 하면서 몰랐던 자기를 발견하고 싶잖아요. 그렇죠?”

“전 이미… 아… 그런가요?”

더 이상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에게 되물었다. 화기애애했던 그날의 대화는 양쪽 모두에게 충격을 남긴 채 끝났다.


그날 이후로 회사에 있을 때면 시도때도 없이 성장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기획안을 낼 때도 ‘우리가 성장하려면’은 빠지지 않는 대목이었다. 일이 잘됐을 때도, 안 됐을 때도 그걸 계기로 성장할 거라고 말했다. 비밀을 하나 말하자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키가 크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성장이란 단어는 열한 살 이후로 내게 멀어진 단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말하듯, 아무런 무게를 싣지 않고 그 단어를 발음했다. ㅅㅓㅇ ㅈㅏㅇ. 이응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 이 단어는 발음하면 할수록 입에 착착 붙지 않고 동동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 단어를 말하면 마법처럼 일이 풀려갔다. 성장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죄송해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성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료의 문자였다. 그땐 나도 회사에 다닌 지 몇 년이 되어, 새 입사자들에게 우리 회사를 소개하는 입장이었다. 습관처럼 “네”라고 답장하는 대신, 장문의 답장을 썼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더 성장하지 않아도 돼요. ㅇㅇ님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멋진 사람이에요.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성장하면 성장통 걸려요!


ㅎㅎ 고마워요! 우리 내일 또 만나요. 


답장 속 그가 웃었다. 그 주 점심시간, 우리는 평소처럼 남은 일을 하는 대신 덕수궁으로 봄소풍을 갔다. 노란 꽃 옆에서 웃는 그를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한 시간의 소풍이 끝나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를 나왔고, 그는 승진해 과장님이 되었다. 


오늘보다 더 나아지려는 마음. 더 좋아지려는 마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 성장이라는 단어를 피하려 이리저리 바꿔 써본다. 여전히 마음에 닿지 않는다. 나아지고 싶지도, 좋아지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내겐 지금 여기를 잘 사는 것도 충분히 벅찬 일이니까. 


어제 못하던 걸 오늘 좀 더 잘하게 된다는 것. 이 정도면 어떨까? 내 안의 무엇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아니, 전혀. 시간과 노력에는 총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잘하게 된다는 건 이전엔 잘했던 무언가를 그만큼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잘하고 싶은 A에 쏟는 시간만큼 원래 잘했던 B에는 시간도 노력도 쏟지 못하게 될 테니까. 


사실, 내게도 요리를 곧잘했던 시기가 잠깐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요리할 시간이 없었다. 퇴근 후에는 아무렇게나 배달된 음식을 먹은 후, 다시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가 해내지 못한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초등학생보다도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계란후라이 하나도 익숙하게 해내지 못했다. 2년 전보다 나는 좀 더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냥 요리실력과 업무능력을 뒤바꾼 것일 뿐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요리실력 뿐이었겠는가. 요가시간과 덕질하는 시간, 눈 감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평화도 일과 바꿔야 했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그 모든 걸 천천히 되찾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찾았다. 맹렬하게 일하던 이전보다 나는 더 일 못하는 사람이 되었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일을 위해 무언가를 선뜻 내주고 싶진 않다. 나는 일만 끝내주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엄청난 능력자는 못 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글도 쓰고, 친구도 만나고, 가족들이랑도 놀고 싶다.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 그것도 자기 능력으로 먹고 사는 프리랜서를 택한 마당에 이런 이야기가 가당키나 한 거냐고 내 안의 무엇이 묻는다. (성장하고 싶지 않다는 그 무엇은 요즘 부쩍 성장하고 싶지 않은 나를 다그치는 일이 많다.) 아, 그렇지. 성장, 성장해야 하는데…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포트폴리오도 다시 만들고, 명함도 새로 파고,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빨리 나를 내보여야 할 텐데… 그래야 할 텐데… 20년을 넘게 성장하지 못한 내 무릎이 시큰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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