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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pr 18. 2024

3년차 반백수, 선배를 만났다


“에디터님 글을 봤거든요.”

예상치 못한 첫 마디였다. 

“그 글 보고 에디터님이 보고 싶었어요.”

이어진 말이 더 놀라웠다. 




월요일 오후, 순라길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이전 회사에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비즈니스에 관련된 글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했다. 하루에 여러 개의 글이 발행되기에, 내부 에디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프리랜스 에디터와 함께 일했는데, 그는 인기가 많은 에디터였다. 손이 비는 때가 없었다. 한 작업이 끝나면 나를 포함한 내부 에디터들이 곧장 다음 작업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프리랜스 에디터가 편집한 원고도 발행 전에는 다듬어야 할 곳이 적지 않은데, 그의 손을 거친 원고는 거의 발행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깔끔했다. 


하지만 일하는 내내 내가 그를 만나고 싶었던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에디터로 인터뷰를 할 때, 내겐 습관이 하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면 인터뷰이를 바래다주는 습관. 지하철역 앞이나 차를 주차해둔 곳까지 함께 걸어갔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다. 인터뷰 중에 친밀감을 느낀 상대에게만 그렇게 했다. 상대는 모르는 나만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퇴사 후, 내가 먼저 연락했다. 책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저는 이상하게 에디터님한테 내적 친밀감을 느껴요. 책 핑계로 연락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2년 만에 만나자는 그의 연락이 온 것이다. 그간의 안부와 요즘 하는 작업 이야기, 육아와 육묘 이야기를 지나 그도 나를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글을 읽었다며. 


“10년 넘게 프리랜서 일을 했는데, 최근에 작업하면서 회의가 든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프리랜서를 검색하다 에디터님 글을 봤어요. 교수가 된 남편을 질투했다는 글이요. 저도 남편이랑 CC로 만나서 오래 연애하다 결혼했거든요. 지금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저는 육아하면서 프리랜서로 일해요. 저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끝까지 읽다가 쓴 사람 이름을 봤는데, 아는 이름인 거예요.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하고 다른 글을 보니까 맞더라고요."


글자가 모이면 글이 되고, 글이 된 글자는 끈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글을 3년 전,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썼다. 프리랜서로 외근을 다녀 온 그날,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 하나 반기는 사람도 인사하는 사람도 없이 구석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다 온 그날, 내리는 비를 보다가 이렇게 집에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 앞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내 이야기를 썼다. 나에게도 이야기가 있다고, 나도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다. 그런 심정으로 쓴 글을 시간이 지나 비슷한 심정을 갖고 있던 이가 읽었다. 끈이 된 글이 우리를 묶어, 마주 앉게 했다. 


내 글을 다 읽었다면 나에 관해 속속들이 알 것이기에 아무것도 숨길 게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전처럼 일로 만난 사이도 아니었다. 마음의 문이 덜컥 열린 나는 열린 문 밖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쩌다가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가 되었는지, 프리랜서를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든지, 아기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일을 쉬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독립한 지 2년이 채 안 된 프리랜서라, 프리랜서 선배인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더 많았다. 


그는 웃을 수 없었던 시간의 이야기를 이제는 웃으며 들려주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한 달의 시간을 지나 이야기의 살은 사라지고 머릿속에 굵은 뼈만 남았다. (이래서 글은 야채나 생선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일은 바로 써야 생생하게 남는다. 간혹 묵힐수록 향이 진한 묵은지가 되기도 하지만.) 뼈를 발라낸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에디터님은 육아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일하세요? 육퇴하고 집안일하고 나면 열한 시가 넘는데, 그때부터 자리에 앉으면 동 틀 때까지 일하는 게 거의 일상이에요. 다음 날 오전에는 눈 감고 육아하고요.”

“에디터님 아기가 몇 개월이죠?”

“이제 6개월이요.”

“그때는 워라밸을 지키는 게 불가능해요. 저도 그때는 진짜 울면서 일했어요. 돌 지나서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나면 좀 나아져요. 그런데 지금도 일을 욕심내서 많이 할 수는 없어요. 저희 아이는 엄마가 곁에 없으면 겉으로 티는 안 내는데 몸이 아파요. 몸에 뭐가 막 날 때도 있고, 몸살도 나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돼요. 출산 전에는 내가 무리하면 나만 힘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무리하면 가정이 불행해지더라고요.”


가정이 불행해진다… 몇 주 전 우리집 모습을 떠올렸다. 퇴근하자마자 옷도 못 갈아 입고 아기를 안아 든 남편,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일해야 했던 오후, 아기를 재우고 각자 책상에서 말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편과 나. 일이 끝났다는 말에 환해지던 남편의 얼굴도 생각났다. 

몇 달 전, 그도 같은 일을 의뢰하는 전화를 받았다. 잠깐 고민하다 오케이를 외친 나와 달리, 그는 통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은 후 정중히 거절했다고. 그 일을 하며 심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던 나는 궁금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어떻게 가려내세요?”

“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언제까지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일이 있어요. 그런 일을 해요. 저번에 의뢰받은 작업은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고요.”

“저는 그 일 하다가 결국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거든요. 일 그만두면서 진짜 생각이 많았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끈기가 없는 사람인가. 일을 받는 입장에서 먼저 못 하겠다고 해도 되는 건가. 나한테 또 일하자는 연락이 올까. 별의별 생각을 다 들더라고요.”

“저도 처음에 일 거절할 때는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에 더 좋은 일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그 일을 놔서 이 일을 받을 수 있었네’ 그러고 안도했어요. 에디터님도 분명 그럴 걸요? 사실 에디터로 일하는 프리랜서가 많은 것 같아도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는 에디터는 많지 않잖아요. 다시는 연락이 안 올 것 같아도 또 연락 와요. 걱정 마요.”


그를 만나고 며칠 후, 다시 전화를 받았다. 이전에 일했던 거래처의 전화였다. 그의 말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는 일이었다. 예정된 마감날짜에 맞춰 일을 하고 완성된 원고를 보냈다. 내 일을 내 속도에 맞춰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 짜릿함만 좇던 내가 놓치고 있던 일의 기쁨이었다. 


스물두 살 때 이후로 지금껏 나는 한 명의 남자만 만났다. 서로의 다른 점을 신기해하던 순간은 짧았고, 이제는 책을 써도 될만큼 서로를 훤히 안다. (가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면을 발견할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둘이 노는 게 제일 재밌고, 둘이 다니는 게 제일 좋다. 그걸 아는 내가 왜 일에서는 새로움만 좇으려 했을까. 미지가 주는 불안함을 느껴야만 일을 제대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헤어지기 전, 그는 새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했다. 

“저도 글을 써보려고요. 제 목소리를 내보고 싶어요.”

사람은 악기와 같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 내 안에서는 무슨 소리가 나올까. 궁금해하면서 매주 빈 종이를 채운다. 그는 무슨 악기일까. 일 밖의 그를 조금 더 알게 된 나는 그의 소리도 궁금해졌다. 왠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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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교수, 나는 반백수> 시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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