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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May 16. 2024

프리랜서 엄마의 어린이집 보내기 대작전

어린이집 입소가 대학 입학만큼 어렵다니...

“아기 어린이집은 언제쯤 보내시게요?”

“글쎄요… 한 9월쯤?”

여름이 왔다. 뜬구름 잡듯 어림 잡던 아기의 어린이집 입소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기를 낳기 전엔 몰랐던 사실 하나.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온라인으로 신청을 해야 한다. 몰랐던 사실 둘. 나처럼 돌 즈음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출산하자마자 신청해야 한다. 몰랐던 사실 셋. 신청한다고 원하는 때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제왕절개 수술이 끝나자마자 신청을 해도 대기를 해야 한다. 은행 번호표 뽑듯 번호표를 뽑고 어린이집의 부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빨리 대기를 했다고 해서 빨리 부름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린이집 입소에는 순위가 존재한다. 맞벌이 가정과 다자녀 가정이 1순위. 대부분의 어린이집 대기인원이 1순위에서 끝나기 때문에,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입소가 요원하다. 


다행히 프리랜서나 자영업자, 취업준비자도 조건을 갖추면 1순위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나 같은 프리랜서는 일단 1순위로 대기를 걸어두고 조건을 맞추면 된다. 프리랜서로 1순위가 되려면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 일하려고 아기 어린이집 입소 신청을 하는데, 어린이집 입소 신청을 하려면 일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그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기가 4개월이 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일을 많이 받으니 몸이 축났고, 무리하지 않는 만큼만 일을 받으니 조건을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두 번째 방법. 취업준비를 하기로 했다. 사실, 취업할 생각은 없지만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취준생이 되어야 했다. 모든 행정 일이 그렇듯이 취준생 역시 어린이집 입소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취업준비 중임을 증명해야 한다. 필요한 서류는 두 가지. 워크넷이라는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후 구직신청서를 받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두 번째다. 지역마다 요구하는 횟수가 다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실제로 기업에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게 참 껄끄럽다. 


입사할 생각은 없는데 지원서를 넣어야 한다는 것. 지원서를 받는 기업의 입장을 고려해도 적잖은 민폐가 아닐 수 없다. 지원자 한 명의 지원서를 검토하고, 면접에 올릴 것인지를 논의하는 데는 노력이 든다. 그런데 애써 연락한 지원자가 뜬금 없이 면접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사실은 애초부터 입사할 생각이 없었다면?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전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채용할 때, 이력서 검토를 맡았던 적이 있다. 업무 중에는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기에, 퇴근하고 나서 해야 했다. ‘기업’이라고 말하면 왠지 크고 단단한 조직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안의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쪼개 일한다. 내가 일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뺏는 일이 결코 달갑지 않다. 


지원자인 내 입장에서도 이 상황은 어렵다. 연락이 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고 둘러대는 게 제일 편할 테지만, 며칠 전에 입사하고 싶다고 지원서를 넣어놓고는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고 하는 게 내 입장에서도 내키지 않는다. 연락이 안 오면 마음이 편할까. 입사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막상 아무 연락이 없으면 또 속상할 것 같다. 이제 나를 불러주는 회사는 없다는 걸 확인사살 당하는 기분이랄까. 


그럼 아예 나를 뽑을 일도 없고, 나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회사에 지원하면 어떨까. 구직사이트를 뒤져본다. 전혀 관련 없는 직무라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이미 내 손은 ‘에디터’라고 검색하고 있다. 이전에 들어본 회사, 언젠가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회사의 이름이 없나 찾고 있다. 마음에 드는 공고의 근무조건을 살피고 있다. 출근시간은 몇 시지?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갈 수 있을까? 야근은 없을까? 혹시 재택근무는 안 되나? 


‘아차차. 나, 회사 가는 게 아니라 어린이집 신청하려고 공고 보는 거지.’

불현듯 깨닫는다. 어쨌든 지원을 하려면 구색은 갖춰야 하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파일을 열어본다.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인다. 채워 넣는다. 이것도 채우고, 저것도 채우고 싶다. 그렇게 새벽을 넘겨서까지 열심히 쓴다. 이게 다 누구를 위한 일인가 싶다가도 ‘이왕 쓰는 거 잘 쓰지 뭐’ 하면서 또 쓴다. 


그러고는 어디에도 지원하지 못한다. 증빙을 받으려면 두 군데나 지원해야 하는데, 한 군데도 지원서를 못 넣고 있다. 나는 뽑히고 싶은 건가, 떨어지고 싶은 건가. 회사를 가고 싶은 건가, 아닌 건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생각의 방향이 뿌리 뽑힌 나무들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흔들림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PC를 끈다. 


남편이 어린이집 대기번호가 또 밀렸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1순위 안에도 순서가 존재한다. 1순위이면서 다자녀 가정이라면 가점을 받아, 나처럼 1순위지만 아기가 하나인 가정의 아기보다 앞 순서로 입소하게 된다. 총 세 곳의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 수 있는데, 대기를 건 어린이집 모두 대기번호가 밀렸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비해, 이사 등으로 빈 자리를 충원하는 9월의 어린이집 모집 인원은 턱없이 적다.


“9월엔 아무래도 안 되겠지?”

“내년 3월을 노려보자!” 

사실, 내년 3월에도 입소가 가능할지 막막하지만 우리는 일단 파이팅을 외쳐본다. 혹시 천운이 따라 9월에 자리가 날지도 모르니, 지원서는 계획했던 대로 9월까지 한 달에 두 개씩 넣어보기로 한다. 


내년 3월까지는 열 달이 남았고, 당장 다음 주부터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나라에서 지원되는 아이돌봄서비스로 일단 열 달을 버텨보기로 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와서 보육을 맡아주는 제도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또 다시 증빙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자격득실확인서, 전년도 소득세 원천징수내역, 신청 전월까지의 통장 입금내역을 출력해 주민센터로 방문하라고 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유지 신청, 국민연금 납부예외 신청, 어린이집 입소 신청과 아이돌보미 신청까지. 회사 다닐 때는 행정 일이라면 머리가 멍해졌던 내가 이제는 행정 처리의 달인이 될 것만 같다. (아마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목 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급해서 이것저것 해낼 뿐, 절대 능숙해지진 않는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기도 키워요.” 

여유로운 얼굴로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서류가 더 필요할까. 서류는 얼마든지 더 낼 수 있는데,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젠가 오긴 하려나.    




글쓴이의 말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아기의 어린이집 입소대기를 걸어둔 프리랜서 육아인이 계시다면, 꼭 대기신청을 하신 어린이집 세 곳에 모두 전화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취업준비자로 1순위 인정을 받는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온갖 대표번호로 대여섯 번 정도 전화를 돌린 끝에 결국 어린이집에 전화해보라는 응답을 받았고, 실제로 어린이집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조금씩 달랐답니다. 신청한 어린이집이 요구하는 서류에 맞춰 준비해나가시면 됩니다. 어린이집에서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어린이집 내부에서 한번 논의해보시고 알려달라고 번호를 남겨두시면 내부 논의 후에 친절하게 답신주시더라고요. 아기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싶은 프리랜서 육아인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언젠가 아기가 어린이집을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 기쁜 마음으로 후일담 또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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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time-tothink/124 


<남편은 교수, 나는 반백수> 시즌 1 

https://brunch.co.kr/brunchbook/banbaek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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