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 생기면 이름 뭘로 지을까?”
“글쎄… 생각해본 이름 있어?”
“응! 주말이!”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를 보며 남편과 나는 두 번째 아이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다. 둘이 아기 하나 보기도 벅찬 지금은 꿈도 못 꿀 이야기지만, 사람 아기가 좀 더 커서 우리 손이 덜 필요하게 되면 우리는, 고양이 식구를 한 명 더 맞이하고 싶다.
내 인생 첫 고양이의 이름은 느낌이다. 6년 전, 망원동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나는 동네 방앗간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퇴근길에 방앗간에 들르게 되었다. 방앗간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꼬마가 키우겠다고 데려갔다 엄마의 반대로 다시 방앗간에 오게 되었단다. 어미는 돌아온 새끼에게 전혀 곁을 주지 않는다고. 일단 고양이를 보고 생각이 있으면 오늘이라도 당장 데려갈 수 있겠냐는 연락이었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더미 사이를 뛰어 다니는 새끼를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한 문장이 스쳤다.
‘느낌이 좋다!’
그래서 고양이 이름은 느낌이가 되었다는 사연. 일상에서 내가 유난히 ‘느낌’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는 건 고양이 이름을 짓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즐겨 쓰는 단어가 내 의지로 맞이한 첫 식구의 이름이 되었다.
언젠가 맞이할(지도 모를) 둘째의 이름을 고르는 데는 더욱 고심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빡빡한 삶을 살면서는 ‘여유가 어떨까’ 생각했다. 여유? 좋지! 그런데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말이긴 하지만, 평생을 가도 닿기 힘든 경지라서가 아닐까. 계획과 우선순위 정하기엔 놀랍도록 소질이 없는 내겐, 일이 많은 날이든 없는 날이든 분주하게 허둥대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주말이라면? 분주하게 허둥대도 왠지 기분 좋다. 우리 부부는 주말이라고 매번 쉬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주말도 쪼개 일하는 ‘갓생러’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육아하는 프리랜서인 나는 주로 밖이 아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육아하는 직장인이 남편은 직장이 대학교인 덕분에 수업이 있는 날 학교에 가고, 수업이 없는 날은 집에서 논문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한다. 이렇게 말해도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워커홀릭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일해야 할 때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최선을 다해 뭘할지 궁리하는 삶
이게 최선을 다해 우리의 상태를 설명한 문장이다. 돈이나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인생 편하게 사는 사람들 같지만, 잊지 마시라. 우리에게는 육아라는 지상 최대 과제가 있다. 앞의 문장에는 괄호로 대문짝 만하게 ‘8개월된 아기를 키우며’가 들어가야 한다. 아무튼, 요약하면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노는 일이 많다.
사실, 그걸 원한다. MBTI 앞자리가 대문자 I인 우리는 서울의 주말이 두렵다. 주말이면 어디에 사람이 최대한 없을지 고민하며 도시의 빈틈을 찾기 바쁘다. 애써 답을 찾아내고도 웬만하면 길을 나서지 않는다. “이왕 가는 거, 사람 제일 없는 수요일에 가자!” 하며 아기와 거실에서 뒹군다. 그래도 주말은 마음이 편하다. 마음 편하게 아기와 놀 수 있다.
일이 많지 않은 ‘거의 백수’인 나는 거의 매일을 일하지 않는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육아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전처럼 글로 된 결과물이 나오는 일을 잔뜩 해야 할 것만 같다. 평일에 아기띠를 메고 동네카페에 가서도, 주말엔 꿈도 못 꾸는 핫플에 줄 서지 않고 들어가는 즐거움을 누려도 즐겁지만은 않다. 찜찜하다.
이제 서른여섯. 서른셋에 회사를 나왔을 때, 회사 밖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일 모퉁이에서 맴돌던 친구들이 나를 필두로 우르르 회사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우리 어떡하지?”
“그러게. 우리 어쩌다 여기까지 나왔지?”
이런 이야기를 하며 평일에 차 마시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다시 회사 안으로 돌아갔다. 회사 밖에 남은 건 나뿐이었다. 돌아갈 계획도 없이.
“나 말야.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이러고 있을까? 친구들은 다 자리 잡고 승진하는데, 나만 계속 진로 고민 중이야.”
대학에 가지 않고 일을 배우겠다며 상경한 스무 살 사촌동생을 만난 날이었다. 열여덟에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고 술집 사장을 꿈꿨다는 아이. 꿈을 향한 아이의 굳은 마음이 부러웠던 날이었다.
“음…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남들보다 덜 열심히 살아서 그런 거 아닐까? 다들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 너는 늦잠 자고, 남들 잠 깨워가며 일하는 평일에도 너는 일 없으면 그냥 잤잖아.”
역시, 위로가 필요한 타이밍에도 냉철한 자기인식을 권하는 사람과 나는 살고 있다. 냉수를 뒤집어 쓴 듯 속이 서늘해지지만,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기에 한참 생각하다 "그건 그렇지?" 하고 말았다.
그런데 새벽이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볼을 꼬집어 졸음을 쫓으며 일하는 사람들도 주말엔 늘어져 쉬지 않는가! 물론 주말에도 새벽마다 조깅과 수영, 영어공부 같은 건설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더 이상 자리 잡은 내 친구들과 나의 오늘을 비교하며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주말엔 마음 졸이지 말고 놀자!
이렇게 마음 먹게 되는 것이다. 주말에는 일을 해도 즐겁다. 월요일 전까지는 담당자가 메일을 확인하지 않기에, 게으름을 피우며 일할 수 있다. 한 문장 쓰고 화장실에 가고, 두 문장 쓰고 과자를 먹으며 느긋하게 마무리한 후 월요일 오전 열 시에 도착하는 예약문자를 보내놓고 베란다에서 뜨는 해를 보며 맞이하는 아침이란. 한두 시간 후에 매운 맛 육아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좋다. 좋다고 쓰기만 해도 좋다. 쓰기만 해도 좋으니까 둘째 고양이 이름은 주말이.
“주말아!”
평일에 불러도 설레는 이름이 될 것 같다. 혹시 당신 주변에 프리랜서라는 명함을 단 반백수(또는 거의 백수)가 있다면 “평일에도 출근 안 해서 좋겠네” 같은 질문은 하지 마시라. 그들도 당신 못지 않게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이젠 아기 집사까지 함께 키울 고양이 이름이니, 다른 집사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아직 말 못 하는 아기 대신 남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우리 둘째 고양이 생기면 이름 뭘로 짓고 싶어? 나는 주말이로 짓고 싶은데.”
“음…그럼 나는…방학이?”
그렇다. 학생뿐 아니라 교수도 방학이 좋다. 벚꽃이 만개한 4월에도 4년차 교수는 벚꽃잎 대신 수업일수를 헤아리며 말한다.
“그거 알아? 이제 수업 열 번만 하면 종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