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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Sep 08. 2022

웃었다고? 내가?

"글쓰면서 웃더라."

 

이번에 맡은 일은 오래 잘하고 싶다는 말에, 그가 건넨 대답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쓰고 있는 글은 형편 없어서 머리를 쥐어짠 기억밖에 없는데...내가 웃고 있었다고?

정말 그랬다면 나는 돌고 돌아 글자 그대로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다.






남편과 마주 앉아서 일하는 게 편하다. 대학시절, 옆학교였던 우리는 시험기간이면 카페에서 마주 앉아 공부를 했다. 취업준비생일 때도 대학원생인 그와 마주 앉아 자기소개서를 쓰고, 회사원일 때도 24시간 카페에서 그는 논문을, 나는 보도자료를 썼다. 요즘은 좋아하는 동네카페 좌식자리에서 나는 일을, 그는 수업 준비를 한다.


이번에 맡게 된 원고는 책을 소개하는 글. 어릴 때는 숯기 없는 성격 탓에 친구 대신 책을 끼고 살았고, 대학교 때는 "읽는 것이라곤 메뉴판뿐인 생활에서 벗어나자!"는 카피를 내걸고 독서모임을 만들었던, 독서모임에서 읽은 한 권으로 책으로 출판편집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지금은 책보다는 유튜브와 훨씬 친하지만 여전히 꽂히는 책만 보면 소유욕이 끓어 오르는 나로서는 그저 벅찬 일거리였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민을 물어오면 조언해줄 말이 없어 책을 추천하곤 하던 나로서는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일이 되니 쉽지 않았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까?' '나만 좋았던 거면 어떡하지?' 고민하다 책을 정하고 나서도 두세 번을 찬찬히 읽어봤다. 혹시나 내가 놓친 불편한 문장들이 있지는 않을지. 글을 쓸 때는 더 조심스러웠다. 유명하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내가 어떤 말로 책을 소개할 수 있는 건지 몰라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소파에 드러누워 육성으로 끙끙 앓기도 여러 번.

"글 분량이 어느 정돈데?"

"A4 한 장 반."

"그걸 이틀 꼬박 고민하고 있는 거야?"

끙끙대다 못 해 거실바닥을 기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일단 가자."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가방을 챙겨 동네카페로 와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글을 마감하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쓰면서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 정도 글을 쓰고 돈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수정을 할까도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그런데 내가, 웃고 있었다고?


공식적인 사회생활은 출판사가 처음이지만, 대학교 때 잡지사에서 인턴을 했었다. 내 자리는 제일 바깥쪽이고 안쪽으로 기자 선배들의 책상이 있었는데, 선배들과 업무 이야기를 하러 오는 분들이 놀랍게도 다 같은 질문을 건넸다.

"일 재밌어요?"  

대학생 인턴에게 기대되는 쾌활함으로 "네!"라고 대답해야 했지만, 아련한 미소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일이, 재밌냐고요? 만화책 보고, 드라마 보고, 친구랑 술 먹고 노는 게 재밌는 거죠"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차라리 일은 할 만해요? 라고 물어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TV와 신문에는 일이 재밌다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왜 일이 재밌다는 거죠? 이 의문을 해결해보고자 기획한 콘텐츠의 제목은 '일이 재밌다는 사람들'이었다. 기획회의 때 내 기획안을 본 사람들의 피드백.

회사사람 1: "일이 재밌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재미없는 일을 왜 하죠?"
회사사람 2: "그러게. 재미없으면 관두면 될 텐데. 이런 콘텐츠가 필요할까요?"


... 나만 궁금한 거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됐건 기획안은 통과됐고 콘텐츠로 나왔다. 일이 왜 재밌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는 의견을 반영해 아주 딴판의 제목을 단 콘텐츠를 읽고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재밌게 일하냐고요.


"사람들이 다 재밌는 일을 하면, 대부분이 다 드라마나 웹툰, 영화 일을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 분야는 지원자가 많으니까 당연히 경쟁률도 높고, 보상은 낮을 수밖에요."

독서모임 멤버의 말이었다. 그렇지. 세상엔 좋아하는 일보다 그닥 좋진 않지만 참고 할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 훨씬 많구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벌지. 그 수고로움에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거야."

남편 역시 동의했다. 좋아하는 일만 찾다가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말았구나. 회사 동료들이 버릇처럼 하던 "콘텐츠 업계는 어렵죠"라는 말의 의미가 속속들이 실감났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돈 되는 기술을 배울 수도 없고, 어떤 기술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고(의지가 있으면 찾아보고 배웠겠지만, 하기 싫은 일은 기어코 하지 않 성미다). 이제 어떻게 살지?



생각하던 와중에 깨닫게 되었다. 헤매다가 헤매다가 진짜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긴 했네. 나 자신의 단순함에 웃음이 났다. 일을 좋아한다는 건 내내 괴롭다가 아주 가끔 웃을 수 있다는 말이구나, 싶기도 했다.

"애들 가르치는 거 재밌어?"

"뭣하러 재미를 찾아.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남편은 여전히 묵묵하지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 때는 상처를 받고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신다. 어쩌면 그도 모르는 사이에 일을 좋아해버린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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