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엄마가 머뭇거린다. 분명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괜찮아, 말해봐."
"내가 너를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엄마 친구들이 딸 뭐하냐고 물어봐서."
"그냥 프리랜서라고 소개하면 돼."
"아…"
엄마의 말줄임표가 길어진다. 엄마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선생님이 네가 소설가가 되면 좋겠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온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엄마는 분명 웃고 있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그때 봤던 엄마의 미소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 때는 작가가 되려고 문학 동아리에 들기도 했지만, 나는 소설에도 시에도 이렇다 할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나고 자란 작은 도시에서 나는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딸내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고, 공부도 곧잘 한다고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랑했다. 집에 내려올 때는 서울내기처럼 화장도 하고 말끔하게 입고 오라고 했다.
첫 직장을 구했을 때도 엄마는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내가 다닌다는 그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 편집자라는 게 도대체 뭘하는 직업인지.
"책 쓰는 작가야?"
"아니. 그냥 책을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만든다는 걸 뭐라고 말해야 돼?"
"작가 만나서 글도 받고, 고칠 부분 있으면 고쳐달라고 하고, 디자인도 맡기고 그러는 거야."
"그래…"
미지근하던 엄마의 반응은 첫 책, 정확히는 첫 책 판권 페이지에 깨알같이 적힌 내 이름을 보고 나서야 달라졌다.
"이제 그냥 이걸 보여주면 되겠다!"
엄마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한 신문사의 콘텐츠 플랫폼 에디터가 됐을 때,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두 번째 직장은 정말로 정체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 회사에서도 신사업이었고, 참고할 만한 플랫폼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엄마가 내 직업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 누가 물어보기에 그냥 신문사 기자라고 했어."
엄마는 나보다 빨리 입장을 정리했다.
사실, 직업이 뭐냐는 엄마의 물음에 프리랜서라고 답한 건 내 잘못이다. 프리랜서라는 말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고용상태를 의미할 뿐, 무슨 일을 하는지는 따로 설명해야 한다.
프리랜서 콘텐츠 기획자.
내 직업을 설명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이렇게 쓴다. 쓸 때마다 뜨끔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있어 보이는 이 말이 내가 정작 하는 일과는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서다.
사실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책 교정교열도 보고, 인터뷰도 하고, 아티클도 쓰고, 강연도 만들고… 들어온 일은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뭐라도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매일 아쉬워하면서도 '이것저것 웬만큼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지'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쓰는 일로 밥 먹고 산다.
어? 그러고 보니 나, 꿈을 이뤘다. 소설도 시도 결국은 못 썼지만,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지금도 누구 하나 궁금해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