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방심하는 사이 일격을 당한다. 배를 내려다보면 불쑥 튀어나왔다 들어간다. 뭘까. 손아니면 발? 엉덩이 아니면 머리?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옆구리를 안고 앓는 소리를 낸다.
임신 17주차, 배 속에서 뽀르르 방울이 터지는 느낌을 시작으로 배 속 손님은 하루가 다르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깊은 양수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엄마에게 손발로 잽을 날리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커진 몸만큼 좁은 집 안에서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다. 늘어난 키만큼 철이 들어버린 손님은 잠깐 몸을 돌릴 때도 양해를 구하는 듯하다. 손님이 조심스레 몸을 비틀 때면 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쪽에서 아랫쪽으로 크게 몇 번 출렁인다. 돌고래가 출몰하기 전의 바다 같다. 하필 사람 많은 공연장 제일 안쪽 좌석에 자리 잡은 이가 공연 중 자리를 뜰 때 미안해하는 움직임 같기도 하다.
손님도 매번 조심할 수만은 없다. 가끔은 온몸이 찌뿌둥한지 잔뜩 오므린 팔다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켠다. 그럴 때는 엄마 몸이 장구가 된다. 신이 나서 울려대는 장구처럼 몸의 양쪽이 동시에 부푼다. 악. 누워서 TV를 보다가, 일을 하다가, 수다를 떨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괜히 멋쩍어한다. 손님도 바깥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차 싶었는지 다시 몸을 움츠린다.
몇 달을 물구나무를 선 자세로 지내야 한다면 어떨까. 머리 끝까지 피가 쏠리고, 온몸의 핏줄이 곤두서는 기분일 것이다. 그런 기분만은 결코 느끼고 싶지 않았던 손님은 머리 대신 당당히 두 발로 서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친구의 카톡에 혼자 속이 상해 잠 못 들던 어느 새벽의 일이었다.
의사는 손님을 보고 “거꾸로 있네요”라고 했다. 이건 거꾸로가 아니라 똑바로 서 있는 게 아닌가? 손님은 의아했다. 세상에 나올 날이 임박한 36주까지 ‘거꾸로 있는’ 아이는 100명 중 다섯 명 정도라고 했다.다섯 명 빼곤 모두가 엄마 골반에 머리를 대고 있기에 그 자세가 ‘똑바로’라고 여겨진 걸까?원활한 출산을 위해서는 아이를 돌려야 한다는 의사 말에 엄마는 밤마다 괴상한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두 손바닥과 발바닥을 바닥에 대고 몸을 마치 테이블처럼 만든 후 허리를 한껏 위로 들었다 밑으로 숙였다를 반복하는 동작인데, 아이를 ‘똑바로’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해볼 테면 해보라지. 오기가 발동한 손님은 딱풀처럼 버티고 서 있기로 했다. 중심을 잡기 힘들 땐 양발을 차례로 동동 굴렀다. 으으.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상한 느낌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손님이 세든 집 아래에 놓인 방광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이 느낌의 정체를 몰라 아래만 감싸 쥐던 엄마는 맘카페에서 한 장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트램펄린을 타듯 방광 위를 통통 튀어 오르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 아이 모습을 보고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신음과 웃음을 동시에 토해냈다. 우리 아이도 지금 재밌으려나? 생각하면서.
엄마는 엄마대로 엄마 될 준비를 하고, 손님은 손님대로 아이 될 준비를 한다. 그중 하나가 양수 안에서 이뤄지는 호흡 연습이다. 대부분이 자신의 오줌으로 채워진 양수를 힘껏 삼키고 다시 내뱉는다. 곧 나가야 할 바깥 세상에는 물 대신 공기가 가득할 것이다. 공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바깥에서 살아가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함을 감으로 안다. 딸꾹. 양수를 잘못 삼키면 일정한 간격으로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처음 감각했을 때, 엄마는 자신의 심장박동인 줄 알았다. 몇 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배 속에서 울리는 진동. 그게 손님의 딸꾹질이란 걸 알고 나서는 조용히 손을 더듬어 진동이 울리는 곳을 찾는다. 그 위로 두 손을 포개본다. 모자를 씌워주듯이. 신생아가 딸꾹질을 할 때 모자를 씌우면 딸꾹질이 멈춘다는 걸 알고 난 후다. 옆으로 누워 손님과 함께 진동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길면 10분이 넘게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진동은 몇 분이 지나면 스르륵 가라앉는다.
엄마의 걱정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아플 때도, 방광이 눌릴 때도, 딸꾹질이 멈추길 기다릴 때도 아니다. 손님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때, 심장이 곤두박질을 친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자세를 바꾸며 누워도 보고 몇 번이나 손님의 이름을 불러도 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엄마의 머릿속엔 어디선가 듣고 읽은 최악의 이야기가 책처럼 펼쳐진다. 급히 옷을 갈아 입고 병원으로 간다.
“아기가 오늘은 움직이기 싫었나 봐요.”
초음파를 살피던 의사의 말에 생각에 잠긴다. 그렇지. 나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은 날이 많은데. 심장은 잘 뛰고 있으니 다행이라며 안심하는데, 모니터 속 손님이 입을 오물거린다.
“입은 움직이네요.”
마우스 커서를 입에 갖다 대며 의사도 모니터를 바라본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술을 움직이며 손님이 뭐라고 말하고 있다. 쉬이. 배 속 양수 소리밖에 들리지 않지만, 입모양을 읽어보려 한다.
집에 와서도 녹화된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입모양을 따라해보는 엄마. 거울을 보고 흉내내다 자신의 입이 영상 속 입을 제법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머지 않아 두 사람이 될 닮은 사람들. 안에서, 밖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