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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ul 19. 2021

아이들과 함께 이별연습(7)

왠지 그건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번에 진행되는 국가근로 사업에는 선발되지 않았지만, 차선책이었던 교내 단기 근로는 다행히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당장 다음 주부터 매일 6시간씩 근로를 하고, 방에 돌아와서는 추천받은 책을 읽거나 교수님에게 메일로 보여드리기로 한 소설을 조금씩 퇴고할 계획이었으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방학이 될 게 분명했다. 물론 오늘처럼 몇 개월에 한 번씩 센터에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일 것 같진 않았다. 왔을 때마다 서운함을 표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서너 명도 넘게 떠난 아이들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 편한 일일 것 같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좀 전에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맞혀보라고 했던 말에는 불만이라는 감정이 포함돼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꼭 나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알고 보면 상호 간의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뒤늦게 빵을 받아서 허겁지겁 먹고 있을 무렵에 간식을 다 먹은 아이들이 신발을 갈아 신고 앞마당으로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단체로 무슨 놀이를 하려는지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2층에서 막 내려온 생활지도사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혹시 저번처럼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이랑 함께 놀아주실 수 있으세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온 내가 보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것 같았다.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한 뒤에 그러겠다고 말했다. 내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따라 나오자 몇몇 저학년 아이들이 방방 뛰며 좋아했다.


  “우와, 이상해씨 쌤이 대신 간다.”


  “선생님도 저희랑 같이 축구 할 거예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그리 내키지만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쉬워서 초조해했으면서도 왜 그다지 의욕이 생가지 않는지 조금 의문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괜히 슬픈 마음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짐작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확히는 아이들을 열 명도 넘게 데리고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고 나서였을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운동장에서 예전처럼 아이들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왠지 그건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신나게 노는 일은 아이들과 지속적인 만남이 보장됐을 때만 가능한 것 같았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 만날 사이인 것처럼 신나게 놀고 나서 다음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왜 다시 오지 않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았다. 나 같아도 그런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아직 마음을 완전히 정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건 떠나려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생각에 빠져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이에 예닐곱 명의 남자아이들은 서로 자신의 팀이 불리하다고 우기며 골대 앞에서 편을 가르고 있었다. 반면에 미끄럼틀 그늘로 간 여자아이들은 땅따먹기를 하려는 모양인지 나무막대기로 신중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느 무리에 선뜻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을 때 마침 교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삼대장을 보게 되었다. 삼대장은 저학년 여자아이들이 있는 곳을 지나 차양막 아래에 있는 계단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세화가 꺼낸 스마트폰 화면을 다른 두 아이도 함께 들여다보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삼대장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굳이 야외활동 시간에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세화와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세화야, 선생님이랑 잠시 대화할 수 있니? 좀 전에는 내가 말이 지나쳤던 것 같아서 그러는데...”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세화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괜찮다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 그러니?’라고 물어보았다. 세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살 어린 채영이의 어깨를 툭 치며 저 멀리 걸어갔다. 내가 조금 당황하며 가만히 있는 사이에 채영이도 내 눈치를 보다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남은 아이는 지승이 뿐이었다. 나는 지승이한테라도 사과의 말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끝내는 관두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이유 있는 행동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추측이긴 하지만 내가 센터에 꾸준하게 오지 못한다는 답변을 들은 상태에서 저렇게 대화조차 거부하는 태도는 앞으로 내게 마음의 문을 닫겠다는 뜻은 아닐까. 혹시 세화는 몇 개월 만에 겨우 찾아와서 실망감만 안겨주는 내가 아니라 계속 센터에 오는 사람들하고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씁쓸하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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