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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Dec 19. 2021

무책임한 어른이 좋아하는 상벌점(2)

상벌점으로 아이들을 다스리려고 했던 못난 나를 반성합니다

  아이들이 인상을 찌푸리거나 봐달라고 호소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오히려 아이가 장차 더 많은 관심 속에서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방관보다는 센터 방문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남아 있던 찜찜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습을 다 끝낸 저학년 아이들이 간식을 먹은 뒤로 가장 신나게 뛰노는 자유 시간의 일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앞마당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 있을 때 센터 출입문이 열렸다. 이전까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공익근무요원이 내게 인사하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 저랑 생활지도사님도 원래 벌점은 잘 안 주거든요. 너무 많이 주면 애들이 오히려 더 반발해서요. 저희처럼 줬다가 나중에 적당히 지워주는 식으로만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공익근무요원은 평소에 나와 다르게 아이들의 유치한 눈높이에 맞춰서 잘 놀아주고, 아이들 사이의 다툼을 꾸짖을 때는 또 누구 하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일의 경과와 인과성을 자세하게 물어서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둔 채 머릿속으로 소설을 구상하거나 구석에서 몰래 신춘문예 당선작 프린트물을 읽고 있는 나와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랐다. 누가 봐도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짧은 충고의 말에도 진심의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익숙한 찜찜함이 턱 밑으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분명했다.


  타격을 받은 나는 작은 목소리로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아까 학습 시간에 벌점 받은 아이 중에 어떤 녀석이 고자질이라도 한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벌점을 너무 많이 남발한 게 화근이었던 것 같아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우거나 수정을 좀 하려고 보니 뜻밖에 화이트보드는 깨끗했다. 그날 오전까지 상점과 벌점란에 표기해 두었던 이름들과 이유들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은 손바닥으로 한 두 번 쓱싹 지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고 나는 헛웃음과 함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가 주는 상점, 벌점 따위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항의의 뜻처럼 보였다. 그때까지 거실 안에서 뛰어다니거나 앉아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평범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나랑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들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화가 났다. 아이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서라도 누구 짓인지 물어서 색출해야 할 것 같았는데, 머리로 아는 것과 다르게 막상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화를 내려고 하니 모든 게 다 귀찮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결국 그날의 일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캐묻지 않았다. 공익근무요원이 충고한 대로 그 뒤로 상벌점 제도도 사용하지 않았다.


  왜 그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까. 그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겨울 방학 동안의 근무 기간이 끝나고 몇 년도 더 지나서였다. 아마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덜 귀찮아지기 위해 그동안 상벌점을 줬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벌점 제도로 아이들을 손쉽게 다스리려고 했던 내 태도는 뉴스에 등장하는 못된 어른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어느 때나 뉴스를 보면 어린이집이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학대당했다는 내용을 자주 접하게 된다.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때리고, 어른에게 이미 큰 상처를 받은 불쌍한 아이들을 체벌해서 기절까지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만 하는 직종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할 수가 있을까.  


  가해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해 겨울에 아동센터에서 내가 아이들을 대했던 마음가짐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사고방식이 짐작됐다. 보육과 사회복지 계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은 일종의 피해 보상 심리 때문이 분명하다. 가뜩이나 급여는 낮은데 관리 대상은 너무 많은 보육과 사회복지 일에 불만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일이라도 좀 쉽게 하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부렸을 것이다. 어리고 연약한 아이들을 강압적으로 대하고 규율에 복종시켜서 처음부터 찍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고 대들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마치 그 시절의 못난 나처럼.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과거에 소중한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하고, 일을 편하게 하려는 궁리만 했던 것 같다. 부끄러운 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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