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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an 21. 2022

회장님을 석방시키기 싫다고 말할 자유(2)

노인일자리 어르신들이 강요 받는 탄원 서명 실태

  "탄원서에는 회장이 왜 구속 돼 있는지 이유가 안 적혀 있던데. 이 선생은 그 이유를 아나?"

  "어제 팀장님께 전해 들었는데, 이유는 모른다고 하셔서요. 아마 건물 짓다가 소송이 들어온 거 같다고 추측해서 말씀하시던데요..."


  "구속된 사유를 명확하게 알아야 인을 하든 말든 해 주지. 세상에 이런 탄원서가 어딨냐고. 그럼 막말로 그 회장이 도둑질이나 강간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언성을 높이는 선글라스 아버님의 말에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이전까지만 해도 탄원서에 사유가 안 적힌 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는데, 듣고보니 문제가 맞는 것 같았다. 만약 건물 짓다가 소송에 휘말린 정도의, 사정을 참작할 만한 경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면 탄원서에 굳이 적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옆에서 얘기를 듣고 계시던 백발의 어머님께서 거드셨다.


  "이거 이거 가만 보니 노인들이 배운 게 없다고 함부로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돈 있고 빽 있는 인간들은 죄를 저질러도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풀려 나고, 힘 없는 노인들은 아무것도 몰라도 되니까 복종만 하라는 거잖아."


  나는 속으로 '아'하고 짧게 탄식했다. 그 말을 듣고나니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나 또한 평소에 뉴스에서 흔히 보도 되는 유전무죄와 무전유죄 사례에 관해 안 좋게 생각하는데, 어쩌다보니 지금 내가 그 일을 방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기관의 말만 일방적으로 전하려고 했던 것도 잘못이었던 것 같았다.


  "맞아요. 듣고보니 그렇네요. 제가 아버님과 어머님께 크게 배운 것 같아요. 그럼 제가 팀장님께 탄원서에 오류가 있다고, 그래서 어르신들이 서명하기 꺼려 하신다고 일단 말씀 드려볼께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 뒤 곧장 우리 팀 단톡방에 어르신들의 거부 반응과 금방 두 분께 들었던 말들에 관해 얘기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 사이에 잠깐 포털 사이트에 건설 회사와 회장의 이름으로 검색해 봤는데 구속 됐다는 기사는 한 건도 찾을 수가 없었다. 팀장의 답장에도 정확한 구속 사유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서명 안 하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돼? 지금 확인 가능하면 이름 전부 말해주도록 해. 내가 전화로 해결 할테니까."


  답장을 확인한 순간 나는 기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두 분께서 말씀하셨다.


  "답장이 없어?"


  "전화로 한 번 말해보지 그래."


  "......"



  두 어르신들에게 나는 차마 팀장의 대답을 알려줄 수 없었다. 사실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뜻에 따르게 하는 방법은 결코 민주적이거나 정당하다고 볼 수 없었다. 현재 일하는 어르신들의 근무 태도를 평가해서 내년에 선발할 때 반영 시킬뿐만이 아니라 직접 1대1 면접을 진행해서 직접 어르신들을 선발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팀장의 말이라면 불복하는 어르신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뜻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팀장의 말은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시 넋이 나간 상태로 스마트폰을 보며 앞으로 몇 걸음 걸어 갔다. 얼마 전까지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을 공부하면 참고서에서 본 자유와 인권 존중, 자기 결정권 등의 개념이 떠올랐다. 한때는 거기에다 밑줄 치며 뭔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허구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백발 어머의 말처럼 현실에서는 어르신들과 같은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이용 당하는 게 당연시 되는 것 같아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힘이 없는 건 매년 2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재개약을 따내야 하는 어르신들뿐만이 아니라 현재 6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그런 불안정한 처지 때문에 나는 차마 팀장의 명령에 불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심 알고 있었다. *




(퇴사하고나니 예전 직장 일도 용기 있게 쓸 수 있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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