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어느 날 내 책상 아래에 어머님 한분이 들어가 계신 걸 목격한 것은 평소와 다름 없는 오후 근무 시간의 일이었다. 그때 내 자리 주변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한 공간 안에서 근무하는 선임과 팀장 모두 수요처를 방문 하러 나가 있었다. 나 또한 1층 사무실에 잠시 서류를 전하러 갔다 오느라 자리를 비워 두었던 참이었다. 계단을 올라 다시 3층으로 들어선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걸까. 더 다가가지 못하고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상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의외로 내 자리가 침범 당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상체를 움직이는 어머님에게 머물러 있던 시선이 의자와 컴퓨터 책상으로 이루어진 내 자리로 옮겨졌다.
그러고보면 문 앞에 서서도 훤이 보일만큼 사실 '내 자리'는 '자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공간이긴 했다. 벽은 커녕 어떤 칸막이도 없이 사방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에 사실 누구나 지나가면서 기웃거릴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하기 편했다. 3층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친해지라는 복지관 측의 의도가 반영된 자리 배치는 아니었다.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과 다르게 내가 속한 전담인력팀이 따로 사무실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일하게 될 공간을 처음 소개 받았을 때의 그 실망감을 잊을 수 없다.
복지관 건물의 3층 문을 열고 들어오면 눈 앞에 긴 복도가 펼쳐져 진다. 복도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두 개의 프로그램실과 회의실이 일렬로 자리해 있고, 오른편에는 각종 비품들을 쌓을 수 있도록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공간들이 블라인드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데, 양쪽 모두 전담인력들이 일하는 공간은 아니다. 전담인력들의 자리는 왼쪽 회의실 벽면 앞, 그러니까 3층 복도 한쪽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다. 벽면에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 사업 접수처'라는 현수막을 테이프로 붙여 놓고, 그 아래 컴퓨터 책상들과 의자들을 갖다 놓은 자리가 바로 전담인력들의 근무 공간이었다.
아무리 하는 일이 단순 반복적이고, 덜 중요하다고 해도 건물 안의 수많은 방들 중에서 하나도 내주지를 않다니. 자격지심이긴 하지만, 복지관 안에서의 낮은 서열을 물리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뻥 뚫린 공간에 있다보니 3층 방들을 이용하는 사회복지사들과 주민분들, 장난감 등의 비품을 가지러 오는 유치원 선생님들, 건물 안을 청소하시는 노인일자리 어머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눈이 마주치는 것도 문제였다. 자리에 앉아 문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많게는 하루에 오십 번도 넘게 인사를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워낙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내 자리에 초록 앞치마를 두른 노인일자리 어머님이 접근해 계신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절하는 자세로 몸을 깊이 숙여 내 책상 아래로 들어가신 어머님의 모습은 좀 낯설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알게 된 것은 움직임을 멈춘 어머님이 마침 고개를 들어올리고 나서였다.
"아이고, 선생님 왜 아무 소리도 없이 와요. 놀랐잖아요."
그 어머님은 건물 청소하시는 어머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게 존잿말을 쓰셔서 처음 기억에 남았던 분이셨다. 나와 다르게 평소에 내 옆자리에 앉은 40대의 여자 선임과는 서로 말을 놓으며 잡담을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간혹 나와 선임에게 인삼맛 캔디를 나눠주시거나 내가 간혹 깜빡하고 잊은 퇴근 전 창문 닫기며 소형 냉장고 물채우기 등의 당번 일을 도와주실 때도 있어서 나도 감사하게 생각하곤 했다.
"어머님, 저도 놀랐어요. 거기 왜 들어가 계시는 거에요?"
"어머님은 손에 들고 계시던 철수세미를 보란듯이 들어 올렸다."
"청소하다가 보니까 여기 큼지막한 얼룩이 하나 있길래 선생님 없을 때 빨리 닦으려고 들어갔죠."
그 말을 듣고나니 어제 비슷한 시간에 어머님께서 청소하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봐 책상 밑으로는 밀대걸레를 집어 넣지 못하고, 잠시 고민하시다가 언저리만 열심히 닦으시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