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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May 26. 2024

졸업이 필요하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걸까? 사람이 상황에 따르는 걸까?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걸까? 사람이 상황에 따르는 걸까?

이전 소속과 이제는 졸업을 확실히 해야 할 때이다. 


어떤 위치에 있는가. 권한의 확대가 생길수록 단편적인 고려에서 복합적인 고려를 통한 판단. 결정이

필요해지는 것은 일상과 사회생활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요즘 많은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데 일단 소속의 변화가 주를 이르고 있다.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모든 일에는 상대가 있어서 발생된 것인데 그게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아쉬울 뿐이지 

굳이 비난을 할 필요도 이유도 많지 않다. 

다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를 사회생활에서 관계성을 만들어 가거나 풀어가는 것은 기술이 필요하다. 

사적인 상황에서 감정이 우선시되어서 관계를 정리하거나 풀 수 있으나 사회조직은 복잡한 상황이 

맞물리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한 번쯤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특히 상하관계에 있어서 문제는 참으로 쉽지가 않기는 하다. 

또한 리더의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에 맞게 처신을 하는 것도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해결해 가야

하기도 한다. 


흔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할 때 합리적인가 아니면 독단적인지 혹은 부하의 실적을 자신의

것인 것처럼 또는 위로는 굴종적이며 아래로 갑질 등을 하는 것을 현실에서 쉽게 접한다.

이를 통해서 자신은 어떤 유형인지를 돌아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적절한 교정이라고 

생각은 한다. 

소히 빌런들의 세상. 마주치거나 관계를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엮어질 때 무조건적인 배척과 비난으로

모든 상황을 풀어낼 수 없기에 대책하는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좋은 뜻으로 도와준다는 개념이 상대에게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에 속했던 집단과 전혀 다른 집단으로 변경이 되었지만 협력관계라는 특수환경에서 선의로 시작된 일에도

기존의 입장에서 특히나 관리하는 사람은 그 도움이라는 것이 자신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여길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번에도 겪었지만 그 부분을 비난하고자 함은 아니고 사회생활을 할 때 이런 경험이 발생되었을 때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를 권한다.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거니와 그런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의 경우에는 대화나 타협 같은 것이

작용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경험칙상 그런 리더가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필요로 할 때는 마치 그런 태도가 없는 듯이 쉽게 부탁을 하거나 때로는 지시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나 사회관계에서 맺음과 위치에 대한 확실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직장상사였지만 본인이 승진이 빨라서 상사가 되었을 때 비록 시작점에서 선배이자 상사였지만

그와 반대의 상황에 사회생활에서는 인간적인 면에서 존중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사적인 관계설정은 

업무의 효율성과 위계질서를 무시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당사자들만의 관계가 아니라 조직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나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상사의 경우에는 오히려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런 행동이 조직 전체적으로 마이너스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어느 정도 경험을 토대로 사회생활을 하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른척할 뿐 대부분 비슷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표면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움직이지만 그 이외 부분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리더가 본인이 편하고자 하는 순간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부작용을 일으키면서도 

그 자리를 잘 지키는 경우도 있다. 

결이 스스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런 것을 이용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건강하지 못한 관리형태라고 하더라도 의외로 그런 차별이 비정규직들에게 잘 통하기 때문이다. 

비록 억울하거나 상대적으로 차별하는 상황에 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어려운 환경이 대부분인

계약직 선생님들에게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것을 알지만 정규직 관리자의 위치에서 이를 무시하거나 아우르는 정반대적인 성향을 경험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해서 전에 있던 사람과 비교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비교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경험상 전과 후의 경험이 다를 때 그 이유를 찾아볼 때 결국 비교하게 된다. 

특히 관리자들의 평가는 비록 아래에서 인사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 집단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게 된다면 그 리더는 비록 그 위치에서 계속 존재하겠지만 진정한 리더가 되진 못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사회생활에서 열등감이 있는 리더라고 해서 승진을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다.

심지어 본인의 실적이 아닌 부하직원의 실적을 그렇게 둔갑을 시켜도 실제로 모르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알고 현실이 이러니 참아야 하거나 어쩔 수 없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다.

다만 현실은 현실이다. 

냉혹하기 때문에 그 대처에 있어서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선택을 추천하게 된다. 그것이 옳고 그르다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것이 현실이라는 장벽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주인공적인 사상과 행동을 동경을 하되 현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있는 일과 없는 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적어도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졸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 시점을 지나치게 되면 조금씩 불합리적인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 그동안 고마웠던 부분과 그렇지 못했던 상황 모두 엮인 이전의 소속에서 확실히 졸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이번에 느끼게 되었다. 

졸업을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계의 재설정과 성장이 동반되는 것일 뿐이다. 

좋은 상사는 좋은 상사대로 그렇지 못한 상사는 그렇지 못한 대로 확실하게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졸업을 해야만 이루어낼 수 있다.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확실히 성장하며 관계를 재설정됨을 주지 시킴으로써 우리는 계속해서

건강한 관계를 강화시키고 나쁜 관계를 작게 만들거나 창고 속에 넣어거나 쓰레기장에 버리거나 

우리 자신이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상황에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만 자신을 단련시킴으로 어느 상황에서나 자신만의

선택과 행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졸업생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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