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를 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남은 반찬통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김치, 콩자반, 멸치볶음, 그리고 어제 먹다 남긴 제육볶음. 각각은 어딘가 애매하고, 한 가지로는 어쩐지 부족했다. 그래서 조금씩 다 꺼냈다. 비빔밥을 할까 하다, 그냥 접시에 따로 담아 보기로 했다.
조금 복잡한 맛이었지만, 생각보다 편했다. 짠맛, 단맛, 매운맛이 서로를 덮지 않고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각자의 맛이 살아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루도 이런 식일 수 있겠다고. 어떤 날의 나는 다정하다가도 쉽게 지치고, 별일 아닌 말에 웃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마음이 내려앉는다. 같은 사람인데, 같은 하루인데, 감정은 매번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그럴 때면 무언가 정리가 안 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꼭 하나의 감정만으로 채워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 기분 좋음과 서운함이, 고요함과 날카로움이—서로 섞이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한 날.
삶이 꼭 조화롭게 정리정돈되어야만 아름다운 건 아닐지 모른다. 모난 마음과 둥근 마음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나다움의 일부분이 아닐까. 그렇게 놓여 있는 것들을 괜찮다고 여길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 안쪽이 조금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