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동네 책방 반스엔노블(Barnes and Noble)코너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창가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잔을 감싸 쥐고 창밖을 보았다.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유리창에 부딪혀 부서지고, 바람에 따라 야자수의 뾰족한 잎사귀가 반짝이며 날렸다. 늘 보던 풍경이었지만, 문득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보는 건 세상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게 아닐까?’
고등학교때 배웠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파장 중 극히 일부인 가시광선뿐이다. 무지개 너머에는 자외선, 적외선같은 수많은 전파도 흐르고 있지만 우리 눈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빨주노초파남보만 본다. 마치 수백만 개의 퍼즐 조각 중 몇 개만 쥔 채 “이게 전부”라고 믿는 것과 같다.
만약 더 많은 파장을 볼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책방 건너편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기류, 책방 공기 속에 떠다니는 입자들, 혹은 영화 <매트릭스>처럼 데이터와 패턴이 흘러가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원본이 아닌것이다. 뇌가 생존을 위해 최소한으로 번역해주는 축소판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기에는 충분하지만, 세상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았다.
지금까지는 ‘내가 보는 것은 도대체 뭐지?’를 물었다면, 이제는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가?’를 묻게 되었다.
이젠, 더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원본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 작은 창 너머에 무한한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다시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았다. 조금 전과 똑같이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내 마음속 세상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넓어졌다.
-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