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쪽만 보는 시선에 균형을 더하다.
1편을 읽은 후라면 연결이 더 자연스럽겠지만 2편만으로도 충분한 이해가 될 것이다.
자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물리 법칙을 벗어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고,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 피가 돌고, 심장이 뛰고, 뇌파가 흐르는 이 모든 과정도 결국 자연의 법칙 안에서 작동한다. 죽음이라는 것도 살아있음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멈추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한 물리법칙에 근거한 자연에는 과거/현재/미래 언제나 ‘균형’이 존재해 왔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중 하나로 모든 작용엔 반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파도가 치면 반드시 밀려난다.
에너지가 몰리면 그만큼 빠져나간다.
삶이라는 시작에는 그 반대인 끝이라는 죽음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해야만 하지 않을까?
ADHD는 단지 ‘결핍’이기만 할까?
우리가 흔히 ‘주의력 부족’이나 ‘과잉 행동’으로 진단하는 것. 그건 단지 하나의 ‘현상’ 일뿐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법칙에는 항상 거론되는 그에 상응하는 다른 능력은 왜 이야기되지 않는가?
아이작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이라는 원리를 떠올렸던 것처럼, 누군가의 ‘산만함’은 사실 엄청난 관찰력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인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만히 정적으로 있지 못하는 행동 이면에는 끊임없는 에너지 흐름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복잡한 생명의 양면성을 무시한 채 한쪽 면만 보고 ‘문제’라고 판단한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을 잊은 인간의 오류가 아닐까?
무언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땐 반대편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균형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상”이라는 기준에 사람을 끼워 맞추려 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는 ‘고쳐야 할 것’, ‘부족한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다르기에 생태계는 유지된다. 숲에는 빨리 자라는 나무도 있고, 천천히 자라지만 뿌리가 깊은 나무도 있다. 모든 것을 평균으로 맞추려는 건 자연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만든 인공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테니스 공처럼 일관된 궤도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자연에서 벗어난 존재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있는 그대로 보되, 한쪽 면만 보지 마라. 어느 쪽이 크면, 다른 쪽 어딘가에도 반드시 무게가 실려 있다.”
오늘 우리가 ADHD, 우울증, 불안, 조울증이라 부르는 그 많은 단어들 속에도 자연은 여전히 균형의 언어로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그 균형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을 뿐.
.. TK
1편: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https://brunch.co.kr/@timothykong/141
3편: ADHD는 진단이 아니라 가능성의 이름이다 https://brunch.co.kr/@timothykong/144
4편: 판단도 소유다 https://brunch.co.kr/@timothykong/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