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 우리가 너무 쉽게 내뱉는 판단들에 대하여

by TK

“The laws of nature are a description of how things actually work 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오늘 아침,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물리 법칙은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똑같이 작동한다. 공을 던지면 중력과 속도, 회전과 각도에 따라 정확히 예측 가능한 궤도로 날아간다. 예를 들어, 테니스 공은 정해진 조건 안에서 언제나 ‘그렇게’ 움직인다. 단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그런데 인간은 그럴 수 있을까?


요즘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마치 테니스 공을 보듯, 즉 언제나 그랬고/지금도 그렇고/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성격이야.”
“애가 어릴 때부터 좀 그랬대.”
“저런 사람은 절대 안 바뀌어.”


과거의 모습 몇 장면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미래까지 단정해버린다. 마치 공식이라도 있는 듯,
‘이런 A면, 반드시 B가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공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신문이었는지 책이었었느지 기억은 정확지 않지만 이야기만은 뚜렷이 기억난다.

몇 년 전,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
한 중년 남성이 다급하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좀 큰 목소리에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사람들 진짜 싫어. 민폐잖아.”
내 옆에 있던 여성이 친구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통화 내용이 들렸다.
“엄마가… 지금 응급실에… 갑자기 호흡이…”

그 순간, 나는 멍해졌다. 우리는 그 사람의 ‘1분’을 보고 그의 인생 전체를,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사회는 점점 더 세분화된 진단과 분류로 사람을 이해하려 한다.
ADHD, 우울증, 경계성 성격장애, 성향 테스트, MBTI…

물론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현대에 난무하는 AI처럼. 적절한 이해와 지원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라벨이 사람의 전부처럼 굳어질 때다.

“걔는 ADHD니까.”
“원래 그런 성격이래.”
“그 사람은 항상 그래.”

이 말들 속에는, 그 사람은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는 단정, 아니면 법칙(?), 이 숨어 있다.


뇌과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뇌가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말해왔다. 이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부른다.


런던 택시기사들의 두뇌의 해마 부분은 일반인보다 크다. MRI를 통해 원래 큰 사람만을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길을 외우기 위해 뇌가 실제로 물리적 변화를 겪은 것이다. 상을 오래 한 사람들의 뇌는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가 더 활성화되어 있다.


즉, 믿고 아니고는 개인의 자유(?)겠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변할 수 있는 존재다.


테니스 공은,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30대, 50대, 70대를 예측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사람을 판단하고 고정하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를 불편해하기 때문일지도?


너무나 흔한 이야기라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사실 중, 세상을 바꾼 사람들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예외’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말콤 X는 젊은 시절 범죄자였다. 하지만 감옥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며 흑인 인권운동의 리더가 되었다.

존 뉴턴은 노예무역상이었다. 후에 목사가 되어 노예제 폐지를 외쳤고, 그가 남긴 Amazing Grace는 지금도 불린다.

오프라 윈프리는 학대와 가난 속에서 자랐지만, 교육과 자기 이해를 통해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이들의 ‘지금’만 기억하지만, 그들의 ‘과거’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다 맞는 말이고 인정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판단을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한 장면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떨지? 판단 대신 질문을 해 보는 거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했을까?"
"그 뒤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나 자신도 다시 보는 거다. 우리가 가장 쉽게 판단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이래.”
“난 절대 못 바꿔.”

그 말이 우리를 더 가두고 있지는 않을까?


테니스 공은 물리법칙을 따른다. 언제나 그 궤도대로 날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날씨처럼, 계절처럼, 때로는 예측을 벗어나 흘러간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어려우며,
그래서 우리가 인간인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너무 빨리 단정 짓지 않았는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좀 더 자주 해주기로.


.. TK편: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2편: 인간도 자연이다. 자연은 ‘균형’을 따른다. https://brunch.co.kr/@timothykong/142

3편: ADHD는 진단이 아니라 가능성의 이름이다 https://brunch.co.kr/@timothykong/144

4편: 판단도 소유다 https://brunch.co.kr/@timothykong/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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