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의 가을, 10월의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저녁에 나는 아버지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등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내 머리카락은 가죽을 자르던 재단 가위에 잘려 거실 바닥에 여기저기 거뭇거뭇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사귄 친구들을 통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들을 알게 되었다. 그 언니들은 학교 일진이었고 처음에는 내게 상냥하게 다가왔지만 차츰 내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천 원, 이천 원부터 나중에는 만원, 이만 원 까지 점점 금액이 커질수록 부담이 커졌다. 결국 나는 문제집을 사야 한다며 엄마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고 친구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야 했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괴로워하다 부모님이 아닌 담임선생님께 모든 걸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학생과에 이 일을 위임하고 내게 진술서를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주셨고 학부모 면담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엄마에게 힘들게 면담 이야기를 꺼내자 엄마는 그동안 내가 받았던 고통보다, 그런 일로 학교에 면담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셨고, 그날 밤 나는 아버지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아야 했다. 아버지가 지쳐서 더 이상 때리는 걸 멈추었을 때, 엄마는 내게 돈을 쥐어 주시며 미용실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그 꼴로 학교에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남동생이 말없이 뒤따라 나왔다. 동네 미용실에 가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미용실에 들어선 나를 본 원장님도 처음에는 놀라는 듯했지만, 숨죽여 우는 내 머리카락을 말없이 다듬어 주셨다.
머리를 다 자르고 집에 돌아오는 길까지 내 동생은 내 옆을 묵묵히 지켜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동생이 보였다. 겨우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된 이 어린 남자아이도 얼마나 두려웠을까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맞은 나도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 날밤 내 동생의 영혼에도 나와 같은 상처가 남을 거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흉하게 잘린 머리카락을 감추려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스프레이로 붙이고 학교에 갔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날 친구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학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진형아 머리가 왜 그러니?" 라며 물었고, 반 친구들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지난밤에 느꼈던 설움과 분노, 부끄러움과 슬픔이 뒤섞인 오만가지 감정이 몰려왔고 그 자리에서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길 바랬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오래전 동생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날 밤 말도 없이 내 뒤를 따라 나왔냐고
" 누나가 자살할까 봐 쫒아 갔지"
우스갯소리로 하는 그 말이 참 가슴 시렸다.
그래, 정말 나 혼자였다면 어떤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상대가 너무 큰 상처를 갖고 있을 때, 대부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하곤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너무 큰 상처는 어느 정도 응급조치가 끝나면 충분히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자꾸 들여다보면 염증만 생길 뿐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상처가 보일 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기다려준다.
그 상처가 예쁜 선홍빛으로 아물 때까지 말이다.
내 글을 읽고 따듯한 댓글과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과
조용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모두 내 상처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함께 지켜봐 주는 영혼의 치유자들처럼 느껴진다.
나도 내 상처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상처를 볼 줄 알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처에 대하여>
오래전에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 간다
젊은 날 내내 속 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를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복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