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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 Jan 06. 2021

어머, 쟤 튀기 아니야?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낯선 환경과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두렵고 설레었던 그 날, 복도를 지나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여자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 어머, 쟤 튀기 아니야?”


어린 나는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묘한 기분이 들어 집에 돌아 가 엄마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엄마는 누가 그런 소리를 했냐며 펄쩍 뛰셨고, 나는 내가 무얼 잘못하기라도 한 것 같아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야 나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빠를 닮아 유난히 검은 피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온 식구들이 모이는 명절만 되면 모든 친척들이 모여 나와한 살 터울인 하란이 에게는 “너 참 예쁘다.”라고 하고 나만 보면 “얘는 왜 이리 씨커멓니?”라는 말이 전부였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막내 할아지버지 아들놈은 항상 나를  보면 ‘못난이 인형’ 같이 생겼다고 놀려 댔고, 작은할아버지는 내게 “ 쿤타킨테”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다.


내 피부색에 대한 놀림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나서 부쩍 심해졌다. 어릴 적 슈퍼에 가면 팔던 과자 중에 블랙죠라는 초코바가 있었는데, 어김없이 그것은 나의 별명이 되었다. 또 같은 반에 피부가 유난히 흰 남자아이가 있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그 아이와 나를 둘러싸고 흰 바둑알, 검은 바둑알이라고 놀리거나 , 우리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회색일 거라고 말하며 낄낄거렸다. 어느 날은 미술시간에 자화상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 얼굴을 다 그리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같은 반 남자 녀석이 내 얼굴을 연필로 시커멓게 칠 해 놓았다.

 

유난히 짙은 나의 피부색은 점점 놀림감을 넘어 나의 한 가지 특징이 되었다. 이름을 못 외우시던 중학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 거기 씨 커먼애 일어나 봐”라고 하시든지, ‘깜상’이라 든 지, ‘검은콩’이라 든 지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내가 원치도 않는 별명을 지어 불러 주었다. 


‘까맣고 못생긴 나’라는 이미지는 내가 사춘기를 넘어올 때까지 나를 괴롭혔다. 어릴 적에는 나의 다른 피부색이 정말 싫어서 집에 있는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바르다가 옷걸이로 맞기도 하고, 락스 물로 세수를 해볼까도 했지만 다행히도 시도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나의 피부색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건,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덕분이었다. 

인자한 외모에 목소리가 따듯했던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나를 부를 때 항상 "흑진주"라고 불러주셨다.


그 말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진주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조개에 일부러 상처를 내거나 이물질을 넣어 조개를 아프게 해야 한다. 그것을 견뎌내는 조개만이 진주를 만들고 버텨내지 못하면 썩어서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진주는 고통과 인내의 상징으로 쓰인다.

 

나도 더 이상 나의 상처들이 나 자신을 갉아먹고 나를 썩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주어진 상처와 아픔을 잘 감싸 내어 빛나는 나만의 진주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검은 피부가 어느 순간 특별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내 피부색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 피부색에 어울리는 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게 어울리는 색깔과 옷을 찾아 입으려 했고, 주변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을수록 더 자신감이 붙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것을 더 좋게 바꾸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구릿빛 피부는 나의 매력이 되어버렸다. 


내가 가진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발전시키면, 그것은 나만의 특별함이 된다. 내 안의 숨겨진 보석은 내가 발견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영영 찾을 수 없다. 내가 찾기 힘들다면 나의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처럼, 옆에서 내 보석을 발견해 주는 분이 곁에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내 안의 원석을 발견하고, 삶이라는 여정 동안 천천히 세공해 나가는 것이 평생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만의 빛으로 반짝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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