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남녀 짝꿍을 지어 주셨다.
나의 짝꿍은 반짝이는 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에는 젤을 가지런히 바른 부잣집 도련님 같은 아이였다.
체크 남방에 멜빵을 두른 그 아이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 선 넘어오지 마, 검은 돼지야.” 라고 하며 책상에 선을 그었다. 2학년이 된 걸 축하한다며,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쳐 주셨던 “우리들은 일 학년” 반주에 맞춰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선생님의 오르간 반주와 아이들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선생님은 연주를 멈추시고 우는 나를 앞으로 데려오셨다.
왜 우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쟤가 저보고 검은 돼지래요.”라며 일러바치곤 또 한참을 울었다.선생님은 우는 나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히셨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도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놀라서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했고 나는 같은 반 남자아이가 나를 놀렸다며 훌쩍였다. 엄마는 정말 그날 바로 내 손을 잡고 태권도 학원을 등록했다.
태권도를 등록한 날 나는 벌써 무슨 힘이라도 생겨나는 것처럼,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도복과 흰띠를 받는데 마치 검은 띠를 받은 것처럼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해 준 말을 아직도 난 기억한다.
“밖에서 맞고 다니지 마, 누가 널 때리면, 너도 때려.”
맞벌이를 하셨던 엄마는 날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항상 나 자신을 강하게 하는 법을 먼저 알려 주셨다.
다음 날, 나는 그 아이의 옆에 앉았고, 그 아이는 어김없이 나를 놀려댔다. 그 아이가 놀려대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다른 남자아이들도 나를 같이 놀렸다.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이번에는 울지 않고 그 아이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된 그 녀석은 나를 계속 약 올렸고, 나는 너무 화가 나 주먹으로 그 아이의 코를 날렸다. 그 아이의 반짝이던 금테 안경도 바닥에 떨어져 나 뒹굴었다.
“악”
그 아이가 코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에서 같이 나를 놀리던 남자아이들은 벙쪄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 뒤로는 그 아이가 다신 날 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와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가끔 학교에서 마주쳤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나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지금 내가 그랬다면, 부모님들을 학교에 모시고 오고, 뉴스에 나오고 난리가 났었을까?
물론 그때 내가 그 아이를 때렸던 것이 좋은 방법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통쾌함과 전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내가 처음 내 앞에 닥친 문제를 나 스스로 용기 내어 해결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가 만약 나에게 “ 네가 참아.”라고 했다든지 아니면 그냥 그 일을 모른 척 지나갔다면 나는 나의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을 내내 그 아이 때문에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