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애도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
얼마나 더 지나야 아무 때나 불쑥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있을까.
충분히 애도하지 않았느냐고, 부모상도 아닌데 뭘 그리 유난을 떠느냐고. 어떤 시선들이 내게 말한다.
나는 답한다. 각자의 슬픔은 고유하다고. 크기도, 색깔도, 깊이도, 농도도 어느 하나 같지 않다고. 해서, 타인의 상실을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일은 아니라고.
확실한 건, 나는 아직 괜찮지 않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한순간 내 세계가 무너져 내렸고, 모든 감각은 마비됐다. 나에게 가장 커다란 존재, 평생에 걸쳐 그 누구보다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해 온 나의 벗이자 사랑의 스승, 신앙의 선배, 인생의 조언자, 나의 분신이 연기가 되어 곁을 떠났다.
허전함.
사별 후 내 삶은 바뀌었다. 단장을 하지 않는다. 검은 옷을 꺼내 입는다. 5분 컷이던 메이크업은 더 옅어졌다. 어차피 눈물 자국과 함께 얼마 못 가 지워지니까. 억지로 슬픈 기색을 하려는 건 아니다. 처음엔 괜히 고인께 미안했고, 이제는 이렇게 있는 게 마음 편하다.
에너지가 부족하다. 슬퍼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는 모양이다. 오전 5시면 몸을 일으키던 나는 출근시간이 임박해도 기운이 나지를 않는다. 아침 운동을 다녀와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린 뒤 출근하고 저녁엔 할머니의 레시피로 직접 지은 밥을 해 먹던 부지런쟁이가 설거지를 쌓아두다 못해 떡 먹을 포크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집안일만 한다. 냉장고에는 쭈글쭈글해진 방울토마토와 쉴 대로 쉬어버린 김치를 빼면 성한 음식이 없었다. 힘을 짜내 그것들을 버리자 텅 빈 냉장고를 쇼케이스 삼아 돋보이는 양갱과 큼직한 상주곶감이 나를 울렸다. 요양원에 갈 때마다 할머니께 드리려고 잔뜩 챙겨둔 작은 선물들이 냉장고와 다용도실, 차 뒷좌석에 남아있다. 내사랑망구가 그리워 혼자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그것들이 서글펐다.
퇴근시간, 허전함은 증폭된다. 나는 기사를 마감한 뒤 홀가분한 시간, 할머니는 요양원 불이 꺼지기 전 더듬더듬 다이얼을 누를 수 있는 그 시간에 우리는 매일 통화를 했다. 오후 7시가 되면, 어딜 가든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큰 소리로 말할 공간을 물색해두곤 했다. 연락처 즐겨찾기엔 할머니 번호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머니가 안 계신 주말은 생경하다. 주말이면 할머니를 조수석에 모시고 보양식을 먹으러 가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스타벅스에 앉아 할머니가 좋아하는 바닐라라테를 마셔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 잠만 잔다. 꿈에서라도 뵙고 싶은데 이 기도는 이리도 안 들어주시는지.
혼란.
느닷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평생 곱게 모셨건만, 귀가 어두우시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주삿바늘을 꽂고 체위를 변경하고 석션을 해대는 통에 할머니는 "구박을 해댄다. 개취급을 당했다"며 우셨다. 온몸에는 피멍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할머니께서 내게 이르는 걸 들은 뒤로는 20분 밖에 안 되는 중환자실 면회시간마다 진정제를 놓아 할머니를 잠에 취하게 만들었다. 어렵사리 대학병원으로 전원 해드렸지만 구급차가 임의로 정한 열악한 병원에서 하루빨리 꺼내드리지 못한 나 자신에게 자주 화가 났다.
한동안 밥도 잘 먹고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짓는 가면도 써 봤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삶의 곳곳에 스며있는 습관들이 할머니를 떠올렸고, 북받쳤다. 방금 나눈 대화를 기억할 수 없어 당황스러운 일이 잦았다. 나의 뇌는 몇 초 전 짧은 상황조차 담아두기를 거부했다. 인지장애, 현실부정, 난독증, 거식증. 그보다 더 힘든 건 당황과 죄책감, 분노, 이제 볼 수 없다는 공포, 좌절, 불안, 그리움,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열망 같은 감정의 조각들. 이런 증상을 ‘외상 후 애도 증후군’이라 부른다는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박사님의 설명을 뒤늦게 접했다.
정돈.
나는 슬픔에 머물어야만 한다. 상실을 마주할 여백. 내 곁을 지키던 할머니를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병원을 옮겨드리지 못해 고통 속에 생의 마지막을 보내시도록 방치한 나 자신을,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날 새벽을 함께 보내지 못한 나의 방심을 자책하고 또 용서할 겨를이 필요했다. 장례식 때 조문객을 맞느라 내면에 집중하지 못한 걸 사무치게 후회하고 가슴 칠 쓸쓸함이, 이제 이 세상엔 내 마음 둘 곳 없음을 애통해하며 할머니를 목놓아 부를 독방이 간절했다. 내면의 서랍을 먼저 차곡차곡 정리해야 비로소 거실 한가운데 놓인 할머니의 유품 상자와 산더미처럼 쌓아둔 집안일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휴식은 슬픔의 고통을 치료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이 참 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도 휴식이다.
- 존 마라스코, 《슬픔의 위안》 중
휴가를 냈다.
티백의 맛이 다 빠져 담백해질 때까지 우려내보기로 했다. 찻잔에 따뜻한 물을 붓고 티백을 담그면 차가 점점 진해지는 것처럼, 두 번, 세 번이고 우려내면 점차 옅어지듯 슬픔의 농도도 조금은 연해지지 않을까.
어렵게 만든 여백. 무작정 침잠하려는 건 아니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애도마저 어떤 순서와 방법으로 할지 플래너에 적고 있다.
내 마음 상태를 스스로 진단한 뒤 할 일들을 단계별로 적어보았다. 일종의 마음보고서이자, 자가 치유계획서랄까.
홈그라운드 자조(自助)모임
상실을 겪은 가까운 이들과 이야기하기. 가장 적확한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이미 몇 친구와 마음을 나누었다. 거창한 자조모임을 꾸리려는 건 아니고, 상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하고 있다.
죽음큐레이션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책과 영화, 음악을 모아뒀다. 공통분모는 상실 또는 죽음, 슬픔이다. 책탑을 정갈하게 쌓아보니 열다섯 권이다. 그림책과 동화책, 산문집, 임종의학개론, 소설 등 다양하다.
감정의 자국들, 변화 기록하기
일기를 뒤적여보니 감정의 변화가 조금씩 보인다. 꼭 한 달 간 아주 힘들었고, 이 글의 초고를 적었던 2주 전만 해도 분노와 죄책감이 더 컸다. 아직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라 할머니께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드리지 못한 게 송구스럽지만, 이 또한 점차 옅어지겠지.
사진 꺼내보기
부재(不在)에 집중하는 대신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으로 시선을 돌려보려고 한다. 부모님댁에 있을 할머니 앨범을 꺼내보기로 했다. 물론 내 휴대폰과 클라우드, 외장하드 등에는 이미 할머니 사진과 영상, 음성이 가득하다. 그 흔적들도 하나씩 꺼내듣고 있다.
할머니 요리 만들기
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주셨던 음식들을 만들며 추억을 소환해본다. 젊은 내가 해도 힘에 부치는데 그 연세에 장을 봐서 번거로운 작업을 일일이 다 하셨을지. 그건 다름 아닌 사랑이다. 함께 한 시절로 시간여행을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를.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장례 이후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집으로 넘어왔다. 소천하실 날, 장례절차 중, 그리고 유품을 가져오던 날 가족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곧 설이다. 할머니가 안 계신 첫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하지만, 모처럼 가족들과 할머니를 추억하면 혼자 느끼던 슬픔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유품 정리
거실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상자 두 개가 놓여있다. 그 안에는 눈물버튼이 잔뜩 들어있다.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신 흔적들,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메모들. 책상 위에는 '퇴원환자를 위한 안내' 같은 종이가 널브러져있다. 할머니가 신으셨던 귀여운 양말과 실내화를 내가 신고 할머니의 작은 발을 떠올려본다. 화장대 옆에는 직접 이름을 수놓아드린 니트티를 걸어뒀다. 할머니가 방에 계신 것처럼 위안이 된다. 내가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다.
일상 회복하기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계가 12월 말에 멈춰있는 부분들이 있다. 이 마음보고서를 완성할 즈음엔 이미 일상에 완벽 적응해서 눈물 대신 미소로 내 사랑의 스승을 추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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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셀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