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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의 나무 Jan 31. 2024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별 후의 삶’

여기, 상실의 아픔을 토해내게 된 이유


아주 죽겠어요. 내 분신을 잃으니.

그냥, 세상이 끝난 것 같아요. 수면제 없인 잠을 못 자요. 그러다 주말엔 잠만 자요.

할머니가 키워주셨거든요. 30대가 아직도 그런 소릴 하냐고요.

네, 합니다. 좀 많이 애틋한 사이라서요.

할머니는 가족 구성원 중 저와 정서가 맞는 유일한 존재셨어요. 요즘 말로 MBTI 궁합이 맞달까요. 좋아하는 음식부터 패션취향, 감정 표현, 생각의 결이 닮았어요. 제가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들이겠지요.


버팀목이셨어요. 고민을 털어놓으면 지혜를 들려주셨어요. 분명 인지장애(치매)라는데,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셨어요. 당신의 나이는 잊으셔도 내 이야기는 전부 기억하셨어요. 중환자실에서 약에 취해 있을 때조차 저를 보시더니 “네가 OO 딸이지? 참 잘 키웠다.”라며 나를 울리셨어요.


꿈 같아요. 전화를 걸면 받으실 것만 같고, 찾아가면 두 팔 벌려 맞아주실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거짓말쟁이가 되어 가요. 소식을 모르는 누군가가 할머니 안부를 물으면,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모호한 대답이 나와요. ‘돌아가셨다’ 말할 자신이 없어 그 좋아하던 아침수영도 안 가요. 현실을 부정하는 내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난독증 비슷한 게 생겼어요. 아니, 정확히는 어떤 글도, 말도,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저장이 안 돼요. 머리엔 오로지 할머니로 가득해요. 간신히 붙잡은 멘탈로 회사생활을 해요. 꾸역꾸역.



사별 후, 반드시 필요한 2가지



그러다 한줄기 희망을 봤어요. 유튜브에서 가족과 사별한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찾아 봤어요. 헝클어진 마음만큼, 정돈 안 된 그분들의 말은 이상하게 쏙쏙 들어와요. 나만 겪는 혼란이 아니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쓴 블로그 일기와 거기 적힌 댓글도 찾아 읽었어요. 내가 아는 감정과 증상들. 위로가 됐어요.


누군가 어루만져주어야 아무는 게 상실의 아픔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분노가 치밀었다, 죄책감에 치를 떨다, 심장에 구멍난 듯한 허망함이 찾아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공감하는 건 비슷한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죽음, 장례, 슬픔, 사별, 허무. 이런 열쇳말이 들어간 책을 모조리 찾아 쌓아놨어요. 장의사나 철학자, 의사, 임상전문가가 쓴 글은 물론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크기만큼 깊은 통찰을 쏟아낸 우리 곁에 보통의 사람들이 적은 기록들까지요. 이들은 나보다 사별을 먼저 경험한 전문가들이지요.


이들은 공통적으로 '슬픔에 머물라'고 조언해요. 지금의 감정을 직면하고, 혼란을 마주하고, 상실의 고통에 머물며 고인을 추억하라고요.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주변에 털어놓으라'네요. 지금 저처럼요. 꼭 가까운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대요.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낸 이라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약이 된다는 거예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요.


이 두 가지 조언을 따라보기로 했어요. 나는 할머니처럼 사는 게 꿈이거든요. 그러려면 이 악물고 다시 살아봐야겠어요. 그 첫 걸음이, 이 감정을 토해내는 일기예요. 누군가의 아픔, 그리고 작은 토닥임. 이곳에선 그걸 등가교환하기로 해요. 그 두 가지면 우리는 더디지만, 차츰, 치유되지 않을까요.




#슬픔 #상실 #삶 #죽음 #사별 #사랑 #할머니



사진. 픽셀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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