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부친 사랑의 편지, 서른해의 추억
돌아보면, 나는 할머니의 쇠약해짐을 감지한 아주 오래 전부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평생에 걸쳐 받은 사랑의 깊이와 크기, 농도만큼이나 상실이 내게 안겨줄 충격의 진도가 어마어마할 것임을 잘 알기에 일찌감치 스스로 진통제를 놓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글을 할머니께 읽어드린 적이 있어요. 눈을 감고 들으신 할머니는 특유의 감탄하는 말투로 “좋다”고 하셨어요. 당신의 마음을 대변하듯 쓴 편지를 흡족하게 여기신 모양이에요. 마지막 순간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며 할머니께서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시는 동안, 나는 이 편지를 곱씹었어요.
사랑하는 나의 공주,
너를 처음 만난 날, 19##년 3월 13일.
네가 태어났는데 꼭 이상한 기분이 들더구나.
자식이 넷이니 네가 첫 번째 손주도 아닌데 말이야.
이상하게 마음속에 평안이 번지며 어떤 위안 같은 게 들었어. 무척 예뻤고 특히 넌 눈이 빛났다. 영롱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옹알이조차 시작도 안 한 네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종일 너를 안고 그 별을 바라보느라 하루가 저무는 줄 몰랐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 큰아들 집에 있다가 기어이 네 아빠 집으로 온 것도 너를 내 손으로 기르기 위해서였단다.
쉰다섯, 요즘 같으면 할머니라는 말이 매우 어울리지 않는 청년의 나이라지만 그때 내겐 이미 ‘함미’라는 호칭이 매우 익숙했단다. 회갑잔치 때 고운 다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한 너와 두 손을 잡고 춤을 추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친척들은 나를 참으로 부러워했다. 장위동에 추도예배를 갈 때나, 개포동 큰 시누이집에 갈 때나 손녀가 강아지처럼 내 손을 붙잡고 함미, 저기야! 하면서 길 안내를 해주니,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왔냐고 가족들은 묻지도 않았지. 여덟 살짜리가 참 물건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대니, 나는 네 자랑을 하느라 시누이들 찾아다니는 일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단다.
어느 겨울 밤새 열이 펄펄 끓던 너를 업고 바깥에 찬 공기를 쐬어 주며 열을 내리던 그날엔 심장이 쪼그라들어 네가 다 나았는데도 나는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회복했단다. 이튿날 곧장 시장으로 달려가 모과를 잔뜩 사다가 청을 담가 두었지. 너는 그걸 먹으면 감기가 똑 떨어졌으니까. 네가 시다고 고개를 돌리면 아직 아픈 거였어, 건강한 너는 그걸 꿀꺽꿀꺽 잘도 마셨지.
너와 떨어져 지낸 그 시절이 가장 외로운 시절이었다. 처음엔 용감한 네가 먼저 혼자 미국으로 떠났고, 네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큰아들이 나를 모시겠노라며 비행기표를 보냈었지. 형제들은 자식 잘 키워 미국에 몇 번이나 다녀온다며 나를 부러워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내겐 유배의 시간처럼 생기 없었단다. 땡큐, 노 잉글리시, 말고는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으니 말이다. 네가 초등학교에 다녀와서 내 앞에 에이 비 씨 디를 써놓고 선생 노릇할 때 잘 배워뒀어야 하는데, 그제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곤 했지.
대학교 시험기간이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단다. 전화를 걸면, 행여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너에게 방해가 될까 염려가 돼 과일 몇 조각 잘라놓고는 아파트 1층 현관문에 내려가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자정이 넘어 들어온 네가 “추운데 새벽까지 왜 밖에 서있었느냐”고 성화를 부려도 네가 와야 잠을 잘 수 있는 걸 어쩌겠니.
김밥을 싸 들고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갔던 그날 기억나니? 날씨가 좋다며 깎던 과일을 통에 담아 과천으로 향했던 봄날을 나는 자주 되감아본단다. 동물원에 가본 게 얼마 만인지, 잔디밭에 앉아 나른한 시간을 보내며 모처럼 여유를 즐기던 때가 어제 같구나. 내가 걸음 걷는 걸 힘들어하게 되면서 그날이, 내가 걸어서 외출한 마지막 날이 되었지.
기자가 된 네가 무시무시한 사람들을 혼내주는 기사를 썼다고 하면, 나는 쉽사리 칭찬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너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쩐다니. 현관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광택이 나는 검은색 고급차가 집 앞에 한 동안 서 있으면, 혹시나 너를 잡으러 온 권세자들이 아닌가 할머니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단다.
품에 쏙 들어오던 너를 안고 기도하던 날들이 이젠 먼 옛날이 되어, 이젠 네가 나를 토닥이며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정신이 지금처럼만 맑게 해달라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구나.
살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음식을 나누고, 같이 울고 웃었지. 구순이 되어 보니, 그중에도 늘 곁에서 세월이라는 여행을 함께 한 살붙이가 가장 좋은 친구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젠 글씨가 생각이 나지를 않아. 받침을 빼먹는 건 예사고 자꾸만 글자가 생각이 나질 않아. 너에게 전하고픈 말들을 고상하게 편지로 옮기고픈데 자꾸만 기억이 흐릿해져 가니 고달프기만 하다. 그래도 참 신기하지, 너와 인연이 닿았거나 될 뻔했던 녀석들은, 생김새가 어떻고 무슨 일을 했는지, 너를 속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대부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너와의 우정으로 충만했던 이 소풍을 끝낼 날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더 든다. 새벽에 눈이 뜨여 창 밖을 내다보다가, 창가에 닿아있는 나뭇잎과 그 위에 내린 이슬을 한 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고 작지만 충만했던 한 방울의 이슬이 스러지는 걸 보니 내 인생과 꼭 닮았지 뭐니.
너는 내가 백 살까지 살 거라고, 어린 시절부터 네가 그리 기도했으니 반드시 이뤄질 거라고 줄곧 나를 북돋워주곤 했지. 그런데 너의 그 간절한 기도가 이뤄진다 해도, 이제 그 또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왜 아쉽지 않겠니, 왜 두렵지 않겠니.
그럴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네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참말 행복한 사람이다. 이 소풍 끝나는 날, 내가 아버지 앞에 가거든 그곳에서 너를 축복하마.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 다오. 부디 이젠, 남들일랑 그만 챙기고 너만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다오.
네 소풍을 응원하며 기다릴 너의 친구, 망구, 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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