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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Nov 21. 2018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고양이.

인간은 누구나 폭력을 겪는다. 때리는 거 말고도 말로도 상처를 깊게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고 행복한 가운데 나만 홀로 있어 소외감도 느낀다. 모두다. 상처를 겪는다.  


상처가 심하면 '폭력'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 2달 됐을 때 모습이다. 

오늘도 나는 회사에서 어떤 폭력 같은 걸 경험했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 등을 이유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상사가 "나이가 몇인데 해외를 안나가보니, 혹시 집이 가난하니? 아님 게으르니? 정말 지루한 인생을 살았구나"라고 한 것이다. 


해외여행 안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 여력이 안되서 못갔던게 당연한 거 아닐까. 왜 말로 어떤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걸까. 


'당신의 말에는 배려도 없고 생각도 전혀 없어요. 수치심을 주는 데 정말 탁월하게 단어 선택을 잘하시는구나'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끔 회사에서 동료들끼리 얘기하다가 "혹시 전쟁이 나거나 세상이 멸망할 때 쯤 살인을 해도 괜찮다면 누가 표적인가"를 논하니 다같이 한명을 떠올렸다. 


그 상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상사의 잘난척과 우쭐함을 오래도록 듣고 있게 만든다. 


어쩌면 회사의 권력이란 것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것 같다. 잘난척과 우쭐함을 널리 전파해도 다들 억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이 권력 같다. 그 쓸데없는 얘기에 시간을 들여 귀기울여주는 것은 권력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삶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어 우울하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돈을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나의 한 살도 안된 고양이는 아마도 폭력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분양소에서 2달간 살다가 나의 집에 왔다. 분양소에서도 고이 자랐고 나에게서도 고이 자랐다. 


내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서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일테지. 


친구들은 내 집에 오면 쪼르르 달려나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보통 고양이들은 숨어있는다고 한다. 


내 고양이는 거절을 당하지도 않았고 배고픈 적도 없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가와서 몸을 부비면 된다. 혹은 발라당 누우면 된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는데 몸도 귀엽다. 귀도 귀여운데 꼬리까지 귀엽다. 


발을 오므리는 모양도 귀엽고 발바닥에 있는 핑크젤리도 귀엽다. 그렇게 모든 귀여움을 온 몸에 담아낸 덕분에 내 고양이는 아직까지 어떤 거절이나 폭력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는 정규직으로 매달 돈이 들어오는 직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양이에게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친밀함이 있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아 생긴 저 친밀감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하얗게 된다. 


하얗게 나도 변한다. 하얗게. 어떤 말로 푹 찔려 빨갛게 물든 마음은 하얗게 변한다. 내 고양이는 죽을때까지 폭력을 경험하지 않다가 죽었으면. 그래서 나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하얗게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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