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과 해인 1

by 티니Tini

해인의 일기장을 덮고는 지원은 “그래 나도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고 덧붙였다.


해인은 지원의 절친한 친구였고 연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행방불명 되었다. 벌써 반년이 지나도록 지원은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첫 며칠은 삐진건가 싶었고 다음 몇 주는 화난건가 싶었고 그 다음 몇 달은 미친건가 싶었다. 네가 나에게 이런 모욕감을 줘? 언제 연락할거야. 박해인.


너는 수학, 나는 국어로 눈높이를 서로 바꿔 풀던 날부터 그가 까까머리에서 긴 머리로 돌아왔을 때까지 친구였다. 그 이후 몇번의 벚꽃놀이와 불꽃축제를 함께하며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


지원은 금요일이면 퇴근 후 습관처럼 해인의 집을 찾았다. 빈 집을 지켰다. 몇 없는 지원의 옷가지로 세탁기도 한번 돌려주고, 찬장에 있는 그릇들도 닦아주고, 그새 먼지가 앉은 소파도 돌돌이를 꺼내 쓱 밀어주었다.


모든 건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를 해인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면 해인의 소파에 앉아 이미 외울 듯이 읽은 그의 일기장을 읽기 시작하였다.


10월 8일

-오전에만 비가 내렸다. 오후까지 내렸다면.


비 내리는 날을 유독 싫어하던 해인이었다. 신발주머니 사이에 우산 하나 꼽고, 사물함에 우산을 꼭 하나 두고 다녔다. 우산을 왜 꼭 두개 챙기냐는 지원의 말에 데리러 올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월 19일

-아빠의 전화는 늘 10초.


아버지 얘기를 자주 했던가. 그의 아빠에 관해서라면 평생을 바쁜 사람 이라는 한 줄의 평가만 기억난다. 1년에 열 번도 못 본다고. 그래도 용돈은 따박따박 보내주어 스물 후반까지도 그는 용돈을 받았던 것 같다.


5월 6일

-보고싶은 지원이.


친구들에게 수소문도 해보고 경찰에 연락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 들은 소식이 없었다. 한 줌 정도 되는 해인의 친구를 지원이 모를 리 없었다.


지원이 아는 해인은 숫기가 없어 누군가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편이니까. 알고 보면 따뜻한 편이라, 모르는 사람들은 차갑게 느낄 수 있는 해인에게 누군가 다가가긴 어려웠으니까.


“나 이지원이야. 너 박해인이지?”

“어?”

“나 체육복 좀 빌려줘. 얼른”

“우리 같은 반인데.”


지원은 해인과의 첫만남을 기억했다. 또래 보다 컸던 지원과 작았던 해인의 체육복 사이즈는 얼추 비슷했다. 나중에 친해지고는 해인은 지원의 첫인상을 한글자로 함축했다.


또라이.


사귀고 난 뒤에는 해인은 그 앞에 사랑스러운 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주었다.


사랑스러운 또라이


지원은 해인과 연인이 되었던 첫 날도 기억했다. 카페에서 밀린 과제 하느라 한참 열 올리고 있을 때 마주 앉은 해인이 지원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지원은 그런 해인을 힐끗 보고 다시 자료에 집중하였다. 그런 지원을 보며, 해인은 노트북까지 탁 하고 닫더니 지원을 본격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 왜, 뭐가.”

“너 얼굴이 북두칠성이야. 점이 이렇게 많았나”

“뭐? 무슨 소리야.”

“이거 봐. 연골에 하나.오른쪽 볼 위쪽에 하나. 콧등에 옅게 하나. 바로 그 옆으로 하나.

입 쪽에 하나. 그 옆. 그리고 다시 왼쪽 귀에 하나 있어.”


생각해보니 오른쪽 손바닥이랑 목 뒤에도 하나 있지 않나 해인의 말에 지원은 아무래도 해인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확신했다.


이정도면 너 나 좋아하는 거야. 라는 장난과도 같은 지원의 말에 그런 것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해인이었고 그럼 이제 친구는 지겨우니 한번 사귀어 보자고 말한 지원의 제안에 둘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6월 9일

-하품은 하루에 몇 번 나와? 벌써 백 번일까? 하품이 나와? 내가 나와?


이 날 하품에 빠졌나. 무언가 사로잡히기에 능한 사람. 한 날은 박감독에 꽂혀 하루 종일 밥 먹는 것도 까먹고 그의 영화만 봤다고 했다.


7월 11일

-떼굴떼굴 굴러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연인이 되고 나니 해인이 달라 보였다. 가령, 친구일때는 차분하고 느긋해서 편했던 것들이 대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그 앞에서 몇 시간이고 혼자 잘 떠들었던 것들이, 가끔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 관계를 이끌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고민에 빠지게 했다.


9월 1일

-싸웠다.

9월 2일

-아직도, 지원이 말 수가 적다.

9월 3일

-보고싶은 지원이.


대판 싸운 건,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는 지원 앞에 “괜찮아 잘 될 거야” 라는 위로들만 늘어놓은 해인과의 대화였다.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주말마다 토익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지원 앞에 야생 사진 작가가 되겠다며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는 해인은 현실감이 없었다.


지난 주말에 찍은 새라며 카메라를 들이미는 해인에게 큰 소리를 지르고는 내가 연락 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


옷장에서 해인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해인의 침대에 누웠다. 며칠 뒤 해인이 미안하다고 택배로 보내 온 반팔 티셔츠. 왼쪽에 붙어 있는 앵무새 자수 패치와 메모를 보고 얼마나 어이없었는 줄 모른다.


P.S. 나 티셔츠에 대고 미안해 소리쳤어. 들려?


11월 9일

-엄마


자기 두고 간 엄마가 뭐 그렇게 좋다고, 좋아하는 남자애가 옆 반 온유 라는 정도가 비밀이던 그 무렵 해인에게는 큰 비밀이 한 개 생겼다. 엄마가 바람나서 아빠와 둘이 산다는 것과 아빠가 엄청 바쁘시다는 것 정도.


일기장 마지막까지도 일정하지 않은 주기와 연속성 없는 내용. 그의 일기장에는 그만큼이지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우울의 흔적이나 감정의 파동이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도 없었다. 어딘가 뚝- 하고 그가 부러 끊어낸 것 같은 느낌.


10월 8일

-오전에만 비가 내렸다. 오후까지 내렸다면. 춥겠지.


2월 19일

-아빠의 전화는 늘 10초. 네가 좀 더 해보지.


5월 6일

-보고싶은 지원이. 나도


6월 9일

-하품은 하루에 몇 번 나와? 하품이 나와? 내가 나와? 하아아암!


7월 11일

-떼굴떼굴 굴러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나 곧 침대에 떨어지겠어.


9월 1일

-싸웠다. 미안해.


9월 2일

-아직도, 지원이 말 수가 적다. 여기서도, 해인은 말 수가 적다.


9월 3일

-보고싶은 지원이. 나도. 보고싶은 해인이.


11월 9일

-엄마, 어머니 보러간거야?


아마 몇 번은 같은 답을 적었을 지원이지만, 오늘도 해인의 일기장 한 구석에 대답을 적어 넣는다. 행여 해인의 글이 지워질까 아주 작은 글씨로 닿지 못할 덧글을 붙여 넣는다.


11월 20일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뭔 소리야 어디있니 보고싶어 그래 나도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몇 번을 더 봐야 그를 조금이라도 이해할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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