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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철나무꾼 Jul 20. 2024

상담소에 다녀온 이야기

50분에 8만 원인 상담을 시작하다

 내가 처음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 건 1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한파로 귀가 빨개지고 뺨이 얼어 감각마저 무뎌진 겨울 저녁.


 상담센터를 처음 찾았을 때의 마음은 조금 살만해진 지금,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당시엔 꽤 절박했다.

전문가에게 내가 가진 고민을 이야기하고 약물 처방을 받듯 적절한 솔루션을 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저 상담을 통해 더 나은 상태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절박함은 50분에 8만 원이라는, 다소 비싸게 느껴지는 금액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당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곤 했다. 작은 말들에, 사소한 배려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반대로 별 일 아닌 일에 서운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상담 초기에는 이런 불안정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땐 더 이상 이런 우울하고 위태로운 상태로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상담센터에서 인적사항과 상담센터를 찾은 이유를 적어 내려 가며 나는 내 발병에 대해 고백했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와 어서 이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욕구 때문인 것 같다.

최근의 고민들,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상담을 통해 나아지고 싶은 점 등을 솔직하게 적었다.

상담 선생님이 사전 조사지를 보고 병의 상태에 대해 물어봤던 것 같다.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언제 이런 증상이 처음 나타났는지, 그 당시엔 어땠는지,

지금은 어떤지에 대해.


 역동 치료의 효과를 굳게 믿고 있는 선생님은 어렸을 때의 나, 청소년기의 나, 성인이 돼서의 나에 대해 천천히 물어봤다.

그러자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내 감정이 너무도 억압되어 있었으며, 스트레스를 적당한 때,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

선생님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재발 전에 약물 처방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상담치료를 꾸준히 받았더라면 재발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면서.


 나는 주치의 선생님이 단약까지 고민해 보자고 할 정도로 나날이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약의 용량은 10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으며 그마저도 격일로 복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발 이후, 이제는 매일 약을 먹으며 기분을 관리해야 한다.

세 번 발병할 수는 없다. 그런 마음이 절박함과 조바심을 더욱 키웠던 것 같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 정의할 수 있는 것’을 ‘자기감’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나에게 결여된 것이었다.

나가서 노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소설 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고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몸만 자랐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과 부모님을 지금 와서 원망해 봤자 내게 도움이 될 게 없다는 것을 안다. 지나가버린 시간이고, 그 원망을 덮을 만큼 고마웠던 기억도 분명 존재한다.

상담을 통해 어렸을 때의 기억을 꺼내면서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감정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고 상처를 덮어놓고 살았던 것 같아 후회가 된다.


 과거의 기억을 꺼내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이를 통해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된 선생님은 나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때로는 내가 가진 나만의 헛된 생각들을

반박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첫 상담을 받을 당시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내겐 그런 연습이 필요했다. 내가 처한 상황과 그것을 대하는 나의 감정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이 훈련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선생님께 가장 감사했던 일은 양극성 장애가 있더라도 결코 죄스러워하지 말라는 응원이었다. 내가 복잡하게,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내 병에 대해 선생님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의했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기분관리의 필요성이 더 커진 것뿐, 나라는 고유한 존재는 발병 이전이나 이후나 동일하다는 것. 변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응원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무척이나 춥고 어두웠던 겨울 저녁, 우울기에 처음 두드린 상담센터의 문을 뜨거운 여름이 된 지금도 열고 있다. 당시 선생님과 나는 내 기분이 다시 안정되려면 한여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 시간만이 해답을 알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늘어갈수록 조금씩 상처에 무뎌지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더 이상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산을 오르는 것 같은 점진적인 변화가 솔직히 지금도 낯설지만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나를 따돌리는 것 같을 때, 세상 모든 것이 싫어질 때, 끝을 모르는 자기 연민의 수렁에 빠지게 될 때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걸 추천한다. 상담 치료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더라도, 한 회 한 회 상담 회차가 거듭될수록, 적어도 내면의 비명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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