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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철나무꾼 Jul 13. 2024

섬 속에 사는 사람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첫날밤 꿈

 삶이 각박하다고 느낄 때마다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섬 속에서의 유유자적한 생활, 마을 주민들과의 사소한 교류.

현실의 시간과 똑같이 흘러가는 게임 속 시간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동물의 숲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48시간, 72시간 같았다.


 현재의 삶에 불만은 없지만, 숙제처럼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일에 쫓기며 사는 게 싫어졌을 때 동물의 숲 세상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중고거래로 타이틀을 구입했다. 귀여운 캐릭터들과 아기자기한 배경, 유유자적한 특유의 분위기가 오랜만에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배경은 마을 주민 몇 명이 고작인 무인도인데, 그래서인지 시끄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무인도에 머물고 싶었다.

 무인도에서의 첫날이 저물고, 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 섬 속에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고.

분명 배경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인데, 고작 몇 명밖에 안 되는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살라니.

게임 캐릭터의 대사는 그러기 위해 내가 섬에 들어온 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철저히 혼자이고 싶어 하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언제부터 혼자이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하루 24시간 동안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뿐이다. 직장에서 집으로 가는 30분.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팀원들이 바뀌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조금이나마 친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과 친해졌다는 느낌.


 상담센터를 다니며 그런 삭막한 마음의 근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기질적으로 정서적 개방성이 낮은 탓도 있지만 난 원래 그렇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말이 맞다면 외톨이로 지내는 게 내 숙명인 것만 같아서.


 상담 선생님과의 긴 대화로 나는 불안한 상황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책으로 고립을 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겁이 많아서, 상처를 주고받기가 두려워서.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 철저하게 혼자인 게 편한 사람.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맛있는 걸 먹고, 혼자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타인으로부터 받는 비판과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한 번도 자력으로 친구를 사귄 적 없고, 친구에게 먼저 연락한 적을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이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고 타인과의 교류가 점점 적어질수록 나는 내가 내 발로 섬에 들어가는 것만 같아 두렵다.

그 섬에 들어간 나를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나 역시도 나를 구해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삭막하고 공허하다.


 그런 자발적 고립이 이어질수록 나는 말수가 적어지고 표현에 서툰 사람이 되어만 간다.

그러던 내게 게임 속 캐릭터의 대사는 사소하고 당연한 듯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직장에서의 나, 집에서의 나.

누군가와 함께할 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직장에서도 서로 협조하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서로 바쁠 때 도와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 함께 업무지식을 공유하면서 성장한다. 점심식사나 회식에서는 조금이라도 친해지기 위해 업무와 관련 없는

일상 속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간다.


 조금 더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부탁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하는 일은 그만두자.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서 주말에 만나자고 해보자. 만나기 싫은데 괜히 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도 버리자.

겁이 많은 내게 여전히 거절은 두렵고 비판은 무섭다. 그러나 극복해야 한다. 많이 겪어봐야 한다.

그 과정이 가시를 삼키는 아픔과 같을지라도.


 사방이 바다인 섬 속에 들어간 나를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일. 모두의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잊혀 가는 일.

어쩌면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일은 그런 일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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