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행복하니?
그동안 다른 일들에 너무 몰두해 있느라구 숙제가 밀려버렸다.
그래서 오랫만에 녹슨 전공 공부 좀 할겸 숙제 바리바리 싸가지고 날샐 각오를 하고 밤 11시 추적추적 내린 빗방울로 수증기 장막 드리워진 도서관을 찾았다.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학교 도서관이 좋은게 24시간 언제라도 찾아가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인 3열(입학할 때만해도 2열(열람실)이라고 했는데...)이 있다는거. 고서(古書) 박물관이라고 빈정대긴 하지만 가끔씩 찾아서 책을 찾아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고...
원래 올빼미 체질인 난 어렸을 때부터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무렵에서야 정신이 말똥말똥 해지면서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된다. 기숙사 살 때도 시험기간에는 응당 통금시간 어겨서 개구멍으로 숨어들어가던 것도 다 2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지금 도서관은 시험기간의 정점에서 졸린눈 비비며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변화가 있다면 고딩판이 되어버렸다는거...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고딩을 볼 수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 때문에 계획한거 포기하고 두 손 들고 나온 새벽 4시까지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고딩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여러 군상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부류는 역시 바퀴벌레 한쌍들.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는...
가끔씩 연애장소로 착각하는 쌍들도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서로 등 토닥거려가며 시간되면 깨워주고 도시락도 나눠먹어가면서 열심히다.
그 모습은 9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리고 눈높이까지 책들 쌓아놓고 2단 책받침 놓고 머리 파묻고 있는 고시준비생들.. 이들 옆에는 항상 몇번을 봤는지 너덜너덜해진 스포츠 신문이 아무렇게나 접혀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젤 짜증나게 만드는 넘/뇬들이 책하나 달랑 남겨두고 자리 비우고 다음날 아침 느즈막히 와서 태연히 제 자리인듯 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한테 자리 비워달라는 XX들.
그리고 여전히 출입구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는 메모들...
'제발 지갑만이라도 돌려주세요.'
'너 이 쉑.. 그거 안돌려주면 주거..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저주할꼬야.'
'도님,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가져갑니까. 제가 몇달을 준비하면서 정리한 책인데. 하늘이 무섭지도 않습니까?'
그리고 평소에 눈길 한번 주지 않다가도 시험기간 무료함을 달래려 읽어보던 대자보들. 도서관 대자보는 항상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내 잠만경의 역할을 해 주었는데.
어둠과 군데군데 빗물로 이루어진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수증기로 가려져 뿌옇게 거리를 빛추고 있는 가로등 조명을 벗삼아
조용히 걸어내려오던 내내
박정현의 '내 안의 나를'이란 노래를 읖조렸다.
또 하루가 그렇게 갔다.
언젠가 친구 수정이가 물었다.
"넌 사람이 왜 산다고 생각하니?"
뜬금없는 질문에 난 대충 얼버무려버렸다.
"글쎄...... ... .... .... 몰까?"
그러자 그 친구가 말하길...
"난...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사는 것에 대해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때의 기억이 참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어제 학회 참석차 광주갔다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여러번 되내여 봤다.
전남대 용지(龍池)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연못이었다.
촉촉히 대지를 적시는 봄비를 한껏 들이키며
수면을 덮은 커다란 잎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연꽃들이 아름다웠다.
우산 하나에 의지해 비를 피하면서
수면에 이는 너울에 멍한 시선을 던지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아무런 욕심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정화상태가 그런 것일까.
마음이 한없이 깨끗해지는 걸 느꼈다.
행복이란거
그런 걸까
어렸을 땐 행복이 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드니 진정한 행복이란 일상성이라는 것을 느낀다.
平(평평할 평)에 凡(무릇 범)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하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이루기 힘든 일상이라는 것.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우리내 일상은 우리 가까이 있기에 비극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문득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아마도 그런 일상을 멀리서 바라보는 순간이 아닐까? 가끔씩은 삶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쉬어가야만 볼 수 있는 그런 순간.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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