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만 10년, 온 우주가 내 등을 떠밀었다

'일단 일어나, 그리고 그냥 해!'

by 유영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호텔과 리조트에는 수영장이 있다.


수영할 줄 모르는 나는,

얼굴을 물속에 담글 수 없는 나는,

얼굴을 물속에 담글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01화 프롤로그: 나는 왜 오늘도 물속으로 들어가는가


그럼에도 꼭 굳이 수영복을 챙겨 들고 가서,

[수영장]이지만 [목욕탕]처럼 목까지 푹 담근 채 앉는다.

앉아서 몸을 불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넓은 수영장에 우리 부부와 외국인 한 부부, 넷만 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이라면 황제수영이라고 너무 신나서 뒤집어졌겠지만

그날의 우리에겐 그저 넓디넓은 냉탕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런 우리 모습이 웃긴다며 킥킥대며 씁쓸함에 젖은 채 일어나야만 했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데ㅠㅠ!!!




결심은 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심을 그저 결심으로 끝나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결심의 끝에 그림자처럼 붙는 말이다.

'꼭 수영 배워야지, 언젠가'

그놈의 '언젠가'를 붙이면서

나는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스스로 막는 사람이 된다.


'언젠가'를 떼어내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또 하나는 너무 많은 생각이다.

머릿속에서 온갖 겪어보지도 않은 일에 대한 생각만 이어가다가

시간만 버리고 결국 상상으로 끝내는 일이 많다.

'들어가기 전에 샤워하고 나와서 또 하고 너무 힘들지 않을까.'

'머리 말리는데 시간 오래 걸리는데.. 수영 전후로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게 아닐까.'

막상 지금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쾌하고 즐거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냥 우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일단 하라. Just Do It.




저 두 가지에 발목 잡혔던 10년.

'언젠가 물공포증을 극복해야지' 생각만 10년째 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뜬금없게도

업무 관련 담당자 교육을 마치고 팀장님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한번 내 마음에 파도가 쳤다.


에너지가 넘치는, 운동 마니아 팀장님은 새벽 수영을 10년간 해오셨다고 했다.

내가 수영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보이자,

수영 배우고 처음으로 리조트 했던 수영이 너무 행복했었다고, 꼭 해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리고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도 붙이셨다.

'왕초보반'은 우선 개설이 잘 되지도 않을뿐더러 경쟁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았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두둥.

대부분의 수영장이 [초보(기초)-자유형-배영-평영-접영-교정-연수]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과정이 끝나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새로운 반이 생기기 어렵다.

그리고 초보반은 어쩌다 한번 개설되면

정말 처음 배우는 사람+배우다가 만 사람+다시 배우고 싶은 사람 등이 몰려 경쟁이 치열하다.


'에이, 역시 안 되겠군.'


그냥 찾아나 보자는 심경으로 가까운 공립 수영장을 검색해 보았다.

마침 바로 다음 주에 수강신청이 열리고, 무려 [왕초보반]이 개설된다는 공지가 크게 떠있었다.


'오!'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니 괜히 더 구미가 당겼다.

매번 티켓팅에 실패하는 느린 손의 보유자는 한번 시도나 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대망의 수강신청일

미리 회원가입을 마치고 9시 땡 하자마자 빠르게 클릭해 본다.

정원은 20명. 9시가 되자마자 눌렀음에도 이미 신청가능 인원의 숫자가 차고 있었다.

마음은 급해졌고 빠르게 결제까지 완료!

순식간에 마감되었고 나는 등록에 성공했다.!!!!!


만약 수강신청일에서 첫 수업까지 간격이 길었더라면

나는 중간에 또 수많은 잡생각 끝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다음 주가 첫 수업이었고, 그래서 우선은 당장 수영복을 주문해야 했고,

수영용품들의 택배가 착착 쌓여갔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수강신청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포기하기엔 아까워져 버렸다.^^


이것이 2023년 4월 말의 일.

이 이후로 내가 다니는 시간 대에는 2년 동안 왕초보반이 개설되지 않았다.

팀장님이 까만 3부/5부 수영복 비추라고 했는데(결국 화려한걸 사게 될거라고) 소심한 왕초보는 까마귀룩을 선택. 그리고 팀장님의 예언대로 되었다. 역시 경험자의 말을 잘 듣자.




10년간 망설이기만 했던 일을 얼떨결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등 떠밀려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물에 들어간 순간 푹 빠져버렸다.

내 인생은 수영 전과 후로 또 한 번 바뀌었다.


걷기 외에는 아무것도 절대 하지 않던 운동 헤이터는 지금은 운동 중독자가 되었다.

운동이 신기한 게, 저절로 모든 생활 습관을 건강한 방향으로 바꾸게 한다.

물론 술을 끊지는 못했지만, 그토록 좋아하던 액상과당은 한 번에 끊었고

채소, 단백질 위주의 건강식을 저절로 찾게 된다.

몸이 건강해지니 정말 동시에 정신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만 생각하고, 그만 망설이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일이 있다면

우선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가자.

일단 그냥 한번 해보자.


이렇게 좋아하고 사랑하게 될 것을,

인생이 또 한 번 바뀌는 순간을,

나처럼 10년을 늦어버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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