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운동치 탈출기: 나만 진짜 왕초보였네.

왕초보 중에서도 꼴등, 이런 저도 해냈답니다!

by 유영


왕초보: 처음 시작, 물적응
(출처-우리 수영장 진도표)

진도표에 따르면

[왕초보반]은 [물적응]이 수업 내용인 반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되는 것들'에 대해 순진하게 잘 믿는 편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반이 정말 왕초보들의 반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정말 나와 같은 왕초보분들도 꽤 많았다.

(왕초보반이니까,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머리를 넣었을 때, 유일한 낙오자는 나였다.

(물론 결국은 성공했지만.)


[지난 글 참고: 03화 선생님, 저 너무 무서워요]


나만 정말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였다.




우리 반은 정원이 꽉 찬 20명으로,

내 체감상 절반은 20~40대, 나머지 절반은 50대 이상으로 구성되는 듯했다.


수영강습에서는 보통 속도순으로 출발 순서가 정해진다.

빠른 영자 앞 - 느린 영자 뒤 순으로 돌아야

전체적인 흐름이 유지가 되고,

상대적으로 잘 못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앞사람 보고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무언의 규칙을 깨고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늘 존재한다고,

(일단 1등이라는 타이틀에 경쟁이 붙는 것이 인간사 아니겠는가.)

수영 카페에서 봤다.

하지만 우리 반은 전반적으로 훈훈하게 양보하는 분위기였다.

젊은이들이 앞으로 가라며 오히려 등 떠밀어 주시기도 한다.


그렇다.

그 서로 등을 떠미는, 배려가 넘치는 와중에

슬프게도 아무도 내 등을 떠미는 이는 없었고,

나는 왕초보반 꼴등이 되었다.




사실 나는 남편 말에 따르면 '운동 신경이 없는 수준'이다.

남편과 나는 당사자 빼고 다 안다는 비밀 사내 커플이었는데,

우리가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기 전, 그냥 정말 리얼 동료였던 시절

준비하던 행사 중 제기차기가 있었다.

다들 모여서 한 번씩 차 보는데, 나도 호기롭게 제기를 던졌는데,


(제기 떨어짐) - 휙(내 발이 허공을 가른다.)


남편은 이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내가 이제 조금 운동 잘한다고 잘난 척하려 하면, 제기 가져오라고 놀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내 겉모습만 보고 내가 운동 신경 없다 하면 믿지 않았고,

(그렇다고 근육질도 전혀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까지는 계주에 반 대표로 꼭 뽑혀서 나갔다.

(그냥 추천이었다. 예선을 해서 뽑혔으면 절대 될 리가 없다.)

중학생 때 체육 시간에는 할 수 있는데 안 한다면서

사랑의 매라며 맞았던 억울한 기억까지 간직하고 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마음 따뜻한 분들이 못한다고 손을 젓는 나에게

에이, 그러지 말고 젊은 처자 앞으로 오라며 배려해 주셨지만,

결국 나는 밀리고 밀려 꼴등에 안착했고, 맨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도무지 숨 쉬는 법을 모르겠다.

'숨 막혀 죽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숨 쉬는 거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라는데,

나 같은 운동치는 '자연스럽게 하세요'가 너무 어렵다.

'엥, 도대체 자연스러운 게 뭐예요?'


거기다 한발 더 나아가

킥판 잡고 발차기하며 나아가기를 시작한 순간

내 머리와 몸은 각각의 혼돈기를 맞았다.


조금씩 얼굴이 친숙해질 무렵

척척 해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아, 저 사실 자유형까지는 배웠어요."


우엥...

나는 조금 억울했다.

왕초보반이라면서요.


물론 내 근처 몇몇 분들은 나와 같은 왕초보였지만,

절반 정도는 최소 자유형까지는 배웠던 분들이고,

배운 지 오래되어서 다시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왔다는 분들도 꽤 많았다.


그래도 오고 가며 나름 내적 친밀감을 쌓은 분들이

"저 먼저 갈게요~" 하면서 점점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나는 제자리에 남았을 때,

좌절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나보다는 잘했고, 이거 하나 못하는 나만 정말 바보 같았다.




모두 각자의 다짐과 결심으로,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처음의 열정은 차가운 물 때문인지 식어버렸고,

낙오자들이 하나 둘 늘었다.

기존 인원이 나가면서 새로 들어온 분들은 더욱더 잘하는 분들이었고,

나는 몇 달이 지나도록 맨 뒷자리를 지켰다.


어렸을 때 유일하게 잘했던 운동은 오래 달리기였다.

사실 그것도 잘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냥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참았던 것이다.

3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쓰러져 보건실 침대에 누웠다.

숨이 너무 가쁘고 온몸이 풀려서 죽을 것 같은데, 개운했다. 기분이 좋았다.


역시 나는 안되나, 그만둘까 싶은 마음이 찾아왔을 때,

우연히 그 오랜 시절의 기억이 깊은 곳 어디선가 발견되었다.

'그래, 10년을 묵혀온 숙업인데 이렇게 몇 달 만에 포기할 수 없지.'


강의 올려주시는 좋은 분들이 많아, 도움 될만한 영상은 죄다 찾아봤다.

용기 내서 자유수영도 다니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갔다.

물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매일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면, 수영장 바닥이 보였다.


25m 레일을 끝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을 멈췄는지.

'멈추지 말아 보자, 어떻게든 바로 멈춰서 완전히 일어나는 것만은 하지 말아 보자.' 나 자신을 달래며 끌고 갔다.

훗날 카페를 보며 알았는데, 25m 완주는 운동신경이 좋은 분들은 금방 성공하는 것 같았다.

나는 꼬박 3달이 걸렸다.

처음으로 레인 끝에 도달한 그날, 레인 끝을 의미하는 바닥의 T자가 보이는 그 순간을 너무 기뻐서 잊을 수가 없다.


나의 경쟁상대는 오직 '어제의 나'이므로, 남들보다 늦은 성공이어도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희망이 되면 좋겠다.

"이런 저도 해냈답니다."


재능 없는 나는 양으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하고, 연습 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확실히 체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체력이라는 것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분명히 나는 아주 조금씩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3년,

나는 이제 선두에 선다.


물론 아직 멀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 묵묵히 이어나갈 것이다.


꼴등이어서 슬펐지만,

꼴등이라 버텼다.


꼴등만이 알 수 있는

슬픔과 절망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칸씩 나아갈 때의 벅참.

뒤돌아보면 훌쩍 성장한 내가 기특해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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