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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줌 Jan 23. 2022

초등학교 기억

왕따

1998년 즈음.

초등학교 우리 반에 '왕따' 아이가 있었다. 지금은 아토피라는 것이 피부병이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안 씻어서 더러운 아이로 낙인찍혔다. 얼굴부터 팔다리까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난 딱지들, 그리고 습관적으로 긁는 습관들은 안 씻어서 그렇다. 더럽다는 인상을 주었다.

누군가는 머리에 이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이'를 실제로 흔하지 않았다. 누가 앞장서서 '쟤랑, 놀지 말자'라고 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과하고 곁에 다가가는 아이들이 없었다. 항상 주눅 들어 보이는 아이에 매번 학교를 들낙거리는 그 애 엄마 덕에 '문제가 있구나'라는 건 너도 나도 알게 됐지만 초등학생에게 그 문제라는 것은 딱히 관심사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학부모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없지만 )  한 가지 분명한 건 어깨가 축 쳐진 그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죄인처럼 보였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 못한다는 선생님 말에 교실 뒷문을 서성이며 관찰하고 아이에게 어땠는지 매일 묻고 선생님과 연락하는 그런 쳇바퀴 같은 나날을 지냈을 듯싶다.


내가 잊지 못하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스승의 날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김영란법이 없을 때고 내가 모르는 촌지들이 오고 갔을 때인 것 같다. 스승의 날에는 빈손으로 가는 애들이 없었다. 나는 선생님 선물에는 관심도 없는 엄마 덕에 학교 앞에서 파는 작은 카네이션 바구니를 하나 사서 교탁 위에 올려났다.

우리 반이 35명이었으니 가로 60cm  정도 되는 교탁에는 선물로 빼곡했다. 어린 나의 시선에 그건 어마어마한 선물이었다.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학생들이 돈을 걷어 같이 선물을 사주었으니 그 교탁 선물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호황 된 마지막 스승의 날로 기억한다.

'저, 크고 작은 박스들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 궁금해할 즈음 담임선생님은 교탁 앞에서 고맙다고 말하셨고 너희가 괜찮다면 일부분은 과학실에 과학선생님께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셨다.(과학선생님은 과학실에 상주해 계시고 따로 전담하는 학생들이 없으니 스승의 날 선물을 나누고 싶은 배려셨나 보다)


"과학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선물을 가지고 지금 가져다 드리고 오세요"

선생님 말씀에 한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7~8명쯤 과학선생님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온듯한다. 거기에 그 여자애도 있었다.



그리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선물들은 다시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 반으로 전달되었다. 그 여자애의 엄마는 선물뿐만 아니라 담임선생님께 우리 아이 좀 잘 부탁드린다는 깨알 같은 편지가 있었는데 젊은 과학선생님은 본인의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다시 전부 반납하셨다. 이렇게 된 상황이 무안했던 담임선생님은 편지가 있는 것도 모르고 갖다 주면 어쩌냐고 아이들 앞에게 그 애를 타박하셨다. 나는 아직도 그때 담임 선생님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그 애는 무슨 잘못 일까? 엄마가 정성 들여 쓴 편지가 있다는 걸 알기나 했을까?

다 같이 보고 있는 앞에서 선생님이 '네가 잘못했어', '문제아'라는 뉘앙스를 준 아이와 친해지고 싶은 아이는 없으리라.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학부모가 되고서 설레기도 하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선다.

내가 제삼자의 시선에서 다시 그때를 회상해본다면 누가 왕따를 만들려고 한건 아니었다. 그런 상황들이 일주일 한 달 반복되다 보니 그 생활 그렇게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그 아이는 의기소침한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내온 듯하다. 아토피라는 것이 약을 처방한다고 하루아침에 깨끗해지진 않을 테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고 자신감 향상도 필요했다. 그렇다고 엄마까지 주눅 들 필요는 없었다. 왜 자식이 우등생이면 얼굴이 꼿꼿이 들고 열등생이면 고개는 수구러들까? 부모의 자리는 여러모로 책임감이 따른다.



졸업 후 새로운 환경에 남들같이 꾸미고 웃고 떠드는 여고생의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많은 시간만큼 많이 변했고 밝아졌음을 느꼈다. 그래 그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도 그 애가 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변하고 해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 선생님은 본인의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셨을까?

커서 돌이켜보니 어른의 가볍게 내뱉은 한마디가  뇌리에 스칠만큼 뾰족했고 슬펐다. 나이가들수록 어른스러운 말한마디,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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