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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여섯 살] ep.68_호빵아 고마워



우주와 자려고 이불 속에 파고들면 우주는 종알종알 말이 많다. 


“눈 좀 감아. 제발 좀 자.” 


말하면 뭐 해. 끊임없이 종알대는데. 

더 잔소리도 못하는 게, “엄마, 나는 밤에 엄마랑 얘기할 때가 제일 행복해.”라는 소릴 이쁘게도 하기 때문이다. 애기 재우고 뭘 좀 더 해보려다가도 그 말이 예뻐 함께 떠들다 시간은 계속 가고, 결국 나도 같이 잠들고 만다.     


요즘 우주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혈장 따위에 푹 빠져 있다. EBS 호빵이는 참 애들을 잘도 가르친다.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도 너무 재미있고 무좀균도 재미있지만 파상풍 바이러스가 젤 좋다. 


“엄마, 발 보여줘. 무좀균 있는가 내가 볼게.”

“엄마, 양치했어? 뮤턴스가 엄마 이에 똥 싸면 충치가 생긴단 말야.” 


뭐 이런 소릴 매일 한다. 

사레가 들어 켁켁댔더니 우리 목엔 구멍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음식이 들어가는 구멍이고 하나는 공기가 들어가는 구멍이란다. 그런데 공기가 들어가는 기도로 물이 들어가서 사레가 들린 거니 걱정은 하지 말란다. 정말 별……     


보통은 그런 얘길 하다가 잠이 드는데, 요즘은 또 다른 이야기로 밤을 보낸다.     


우주     엄마, 방금 초록색 네모가 나타났다 사라졌어!

나        자라니까! 눈 안 감아?

우주     눈 감았어.

나        근데 무슨 초록색 네모야?

우주    눈을 감으면 알록달록한 것들이 눈 안에 나타나잖아. 

          엄만 안 그래? 지금은 노란 별들이 반짝거려! 빨간 새도 잠깐 보였어!     


웃음이 터졌는데, 나도 딱 우주 나이 때에 그랬다. 눈 감으면 눈앞에 나타나는 아롱아롱한 잔상들. 그게 하도 신기해 밤에 종알거리다 엄마한테 욕 먹고 그랬다. 그래서 밤마다 우주와 그 얘길 한다.     


우주     오늘은 엄마 뭐 보여?

나        방금 초록 줄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빨간 동그라미들이 왔 다 갔다 해.

우주     어? 나도 그랬는데! 파란 나비는 안 보여? 난 보이는데?     


사실 이젠 예전 같지 않다. 그렇게 선명했던 아롱아롱 잔상들은 이제 그냥 그렇다. 뭐가 보이나, 집중해야 느껴진다. 그래도 마구 떠들어준다.     


며칠 전엔 우주가 물었다.     


우주     엄마, 우주는 어떻게 생겼어?

나        응?

우주     아기 우주가 엄마한테 어떻게 왔냐고.

나        아, 그거? 엄마가 맨날 삼신할머니한테 기도했지! 

           예쁜 아기 우주, 엄마한테 보내 달라고.

우주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삼신할머니라고 있어. 아기들을 데리고 있다가 엄마들한테  보내주는 요정 할머니.

우주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애기는 정자랑 난자가 만나서 생기는 건데? 

           정자 수억 마리가 난자한테 막 달려가서 1등 한 정자랑 난자랑 껴안아서

           애기가 만들어지는 건데?

나        아, 그런 거야? 그래, 그런 거지.

우주     근데 왜 그렇게 말해?

나        넌 알면서 왜 물어, 그럼?

우주     아니, 나는 어떤 정자가 엄마 난자한테 1등으로 갔는지 그걸 물어본 거잖아.

나        아. 그건 엄마도 몰라. 안 보이는데 엄마도 모르지.

우주     그럼 모른다고 해야지.

나        알겠어. 엄마도 몰라.

우주     알겠어. 이젠 모르면서 이상한 대답 하지 마.

나        알겠어.     


아무래도 EBS 《호기심 딱지》 호빵이에게 과외비 지불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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