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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여섯 살] ep.72_나의 똥강아지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우주는 어린이집을 거의 가지 않았다. 코로나 등쌀에 별수 없었다. 나는 모든 작업을 집에서 해야 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나야 그런 식으로 시간을 조절하며 일할 수 있다지만 다른 워킹맘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인지. 


“결국 그만뒀어. 어쩔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늘어갔고 우리는 만날 수도 없었으므로 밤마다 카톡창을 열어놓고 또닥또닥 메시지를 보내며 혼술을 했다.  


비도 부슬부슬 떨어지는데 우주는 지루해서 데굴데굴 굴렀다. 우산까지는 필요 없고 모자만 씌우면 될 것 같아 결국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킥보드 폭주족으로 자란 우주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쌩쌩 달렸다. 나는 그런 우주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놀이터 모퉁이를 뱅 돌아 사라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갔지? 종종걸음으로 살펴보았지만 없다. 혹시 차가 들어오는 곳으로 갔나? 어찌 된 거지? 가슴이 쾅쾅거렸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놀이터를 벗어나면 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몇 번이나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는데. 그런데도 그리로 간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이 비 떨어지는 날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오다니, 내가 정신이 나갔던 걸까?


몇 바퀴를 돌아도 우주가 보이지 않았는데, 저 멀리 놀이터 끄트머리 나무 아래 우주가 킥보드를 세우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버럭 성질을 낼 참이었다. 

그렇게 빨리 사라지면 어떡해! 막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우주가 더 먼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엄마가! 차에 치여 죽은 줄 알았잖아!” 


그 말을 듣는데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피들피들 웃음이 나버렸다. 아우, 저걸 그냥. 생각해 보면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내 똥강아지. 언제 그렇게 킥보드 폭주족이 되어서는. 우주는 집에 돌아가는 내내 화가 나서 나에게 씩씩거렸다.  


“엄마 때문에 정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무도 없는 비 오는 아파트 단지를 우리는 그렇게 걸었다. 

우주는 성질을 내고, 나는 풉풉 웃으면서.  


한글을 제법 배운 우주는 아이폰 자판 눌러보는 걸 좋아해서 자꾸 내 페이스북을 열어 댓글을 달려고 한다던가, 카톡창에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그래서 아이폰 메모 앱을 알려줬다. 우주는 몇 줄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그렇게 놀곤 했다. 


어느 밤, 문득 생각난 문장이 잊힐까, 나는 침대에서 메모 앱을 열었다. 끄적여놓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거기, 우주가 쓴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아주아주 행복합니다. 우리집은좋습니다.” 


아직 띄어쓰기는 모르지만 맞춤법은 훌륭했다. 나는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맙소사. 우리는 아주아주 행복하고 우리 집이 좋다니. 그 두 문장을 보니 나는 진짜 아주아주 행복한 것 같고 우리 집도 엄청 좋아보였다. 왜 코끝이 찡해지고 콧물이 살짝 맺힌 건지는 나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우주는 7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서둘러 등원 준비를 하며 우주도 설렜지만 나도 설렜다. 빨리 보내놓고 내 흰 책상에 따뜻한 커피 한 잔 가져다 놓고 밀린 원고를 써야지. 아니야, 조용히 넷플릭스를 좀 볼까? 우주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나와 헤어지며 말했다. 


“나 없는 동안 파마도 하고 커피도 좀 마셔.” 


응, 그래…… 고마워, 나의 똥강아지. 

엄마가 파마를 새로 할 때가 되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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