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통장
가계부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복잡하다'라는 연상이 바로 된다.
그 정도로 나는 가계부를 적어본적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면에, 친정집에 가면 늘 놀라곤 한다.
빼곡히 몇년치가 책장에 꽃혀있다. 주부9단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결혼생활에 맞게 37년의 가계부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러차례 이사를 다녔음에도 지금까지 가지고 다닌 손때가 묻어있는 세월의 시간들이 함께 묻어있다. 단돈 10원도 아껴야 잘산다라는 엄마의 가르침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숨이 막혔었다. 그래도 존경하는 것은 힘든 상황에서도 늘 후원을 하고, 봉사를 해왔다는 점은 존경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고등학교 2학년때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던 길에 자전거를 타신 어르신이 골목에서 교통사고가 나신 것을 뵌적이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이송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다. 넘어진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흩뿌려져있던 쌀 한포대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집에 귀가해서 부모님께 이야기를 드렸더니 다음날 아침 엄마가 관할 119센터에 수소문 끝에 부탁을 드려 그 어르신 댁에 쌀 포대와 함께 과일을 보내드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엄마의 선한 마음이 동생과 나에게도 잘 전해져서 나도 도울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친구들과 놀러가야할때, 먹고 싶은 것이 많을 때, 사고 싶어지는 것이 많아졌을 때 용돈을 올려달라고 했을때 타당한 이유가 아니면 올려준 적 없는 엄마가 야속할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따금씩 우편함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우편봉투를 보게되면 후원할 바에는 우리 용돈이나 더 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던 것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린 마음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늘 깔끔한 복장으로 다니셨지만, 옷이 많지는 않으셨다. 신발도 늘 자주 손이가는 몇 켤레만 있으셨다. 그래도 집 주변에 있는 백화점에 데려가 필요한 옷가지와 신발을 사주셨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매장을 지나가다보니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라며 본인 것보다는 자식들, 손주, 남편을 먼저 챙긴다.
그래도 엄마는 만원씩이라도 꼭 모아서 종잣돈을 모으는 돈 관리를 하신다. 은행을 근무하시긴 하셨지만, 올곧은 엄마의 돈에 대한 관리는 배워야 하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가계부에는 지금까지의 써왔던 지출내역이 나와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엄마의 숨겨놓은 사랑이 담겨있다. 자신의 것은 아끼고 아껴서 가족들에게 내어준 사랑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