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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Nov 20. 2017

디어 프렌드

내/네가 할 일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이나 엄격한 단식, 금연 등의 행동들이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다.
당신의 모든 부정적 느낌, 권태, 어리석음, 절망까지도 사랑하라.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당신 마음의 그러한 변화는 진실로 당신의 수준을 변화시킬 것이다.
-타데우스 골라스, <게으른 사람이 깨닫는 법>

acceptance ⓒ Phil (출처: flickr.com)

예쎄 이야기

짧은 만남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의 얼굴은 잊어버려도 그의 분위기나 말은 남아,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 독일에서 만난 '예쎄'도 그랬다. 워크숍에 참가했다가, 그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예쎄 Yesse. 네덜란드 출신으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트레이너였다. 친구라고 하지만, 나보다 열댓살은 많았다. 


예쎄는 장신들의 나라 네델란드인답게 키가 컸다. 188cm는 될 것 같았다. 예쎄라는 이름이 독특해서 뜻을 물어봤는데 의미는 없었다. 여러 의미를 넣어 이름을 짓는 우리와 달리, 서양에선 대개 별 뜻 없이 이름을 짓는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세션을 함께 했다. 간혹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예쎄가 그랬다. 아침 10시부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후 4시였다. 어찌나 말이 잘 통했는지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옆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고민거리, 앞으로 뭘 할 건지 인생 전반을 털어냈다. 놀랍게도 그는 내가 하는 생각과 말을 모두 이해했고, 심지어 내가 어떤 느낌을 품고 있는지도 정확히 이해했다. 예쎄는 내가   A라고 말하면, 찰떡같이 그대로 A라고 알아들었다. 부연설명도 필요없었다. 내 침묵마저 이해할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놀라운 느낌이었다.  


예쎄는 자신의 성격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는 요새 쓰고 있는 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말했다. 


"내 지나온 10년 간의 방황을 총망라하는 책이 될텐데... 방향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내 길을 찾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해온 것들이 너무 많고, 한번에 다루기엔 너무 방대해."

 

그리고 블라블라... 


예쎄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동안 완벽함을 추구해왔지만, 사실 불완전하다는 걸 발견했다 이거지.  너의 그 불완전함을 놓고 실컷 웃어버려. ㅎㅎ   실은 너무 웃기잖아. 엄청나게 심오한 걸 찾고 또 이루려고 하는데 실은 너무 하찮고 보잘것 없지. 그게 얼마나 웃겨. ㅎㅎㅎ 그러고도 완전히 괜찮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나는 괜찮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집중해서 써봐.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거야."

Nothing is nothing ⓒGary (출처:flickr.com)

매우 심오한 것을 찾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책.  

듣고보니, 매우 그럴 듯 했다. 나는 언제나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되기를 바랬지만, 언제나 확인하게 되는 건 나의 부족함이었다. 내 안에 잘난 녀석과 못난 녀석이 함께 공존한다는 건 풀기힘든 숙제였다.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하지만 실은 헛점 투성이의 인간이라는 걸 누구도 몰랐으면 했는데.... 예쎄는 그 이야기부터 쓰라고 했다. 흠, 

예쎄는 다시 당부했다. 


"기다리지 말고 당장 써.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거,그 자체가 완전함이야.
거기에서 모든 게 시작될거야. 정말 환상적인 책이 될 거 같아."


언제나 저 꼭대기를 향하지만, 실상 나는 여기 바닥에 있다는 걸 마음껏 표현해버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웃기냐며. 정말 멋진 책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예쎄에게 이 책이 나오면 네 덕분이니, 출판되면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날 세션은 그와의 대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이 따뜻함과 충만함을 느꼈다. 웃어도 좋고, 말하지 않아도 좋고, 말해도 좋고. 별 것도 아닌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순간이 마냥 좋았다.  내 안의 뭔가가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그날 오후 차를 몰고 네덜란드로 돌아갔고, 나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포옹을 하면서 그가 해준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Create beautiful things.”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내.


아름다운 것들? 그게 뭘까? 오래 생각했다. 나는 특별히 한정짓지 않기로 했다. 아름다운 건, 사랑처럼 너무나 광대한 것이다. 아름다움 뿐 아니라 분노, 질투, 어리석음까지 아름다울 수도 있다. 나는 무엇도 만들어낼 수 있고, 무엇도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다.  나는 그 뒷말을 마저 채워 간직했다.

 

'네가 가진 창조력으로, 인생에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름다운 것들로 인생을 채우는 거야. 

그리고 무엇이 오든, 네 삶을 이룰 아름다운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무엇이 오든.

그게, 네가 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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