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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Jun 06. 2020

절망의 끝에서 글을 쓰는 이유

해방의 글쓰기


죽음의 순간까지 글을 쓴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장 도미니크 보비. 그는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뇌졸증으로 쓰러져 20일 만에 깨어난다.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은 그대로 마비되고 만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한 쪽 눈을 깜빡이는 것 뿐. 그런데 그는 왼쪽 눈을 깜빡여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해왔고 가장 잘 해왔던 걸 하기로 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왼쪽은 과거의 보비와 오른쪽인 마비된 보비의 모습이다


왼쪽 눈을 깜빡여 알파벳을 표시하면 그를 언어치료사가 받아적는다. 엄청난 인내심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작업. 하나의 단어가 완성되는 것도 쉽잖다. 하루 반 페이지씩, 1년 3개월 동안 20만번의 눈 깜빡임으로 자서전 <잠수종과 나비>를 써냈다.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산인 '기억들'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잠수종은 잠수할 때 쓰는 종으로 몸에 갇혀 있는 답답함을 표현한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있기 위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는 집념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글을 쓰는 한,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본래의 나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도미니크는 책이 출간되고 10여일 만에 죽는다. <잠수복과 나비>의 마지막에 장 도미니크는 이렇게 썼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다른 곳에서 구해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또 다른 이야기.


한소녀가 있다.

한소녀가 있다. 16살인 그녀의 이름은 ‘프레셔스(precious; 귀하다는 뜻). 하지만 이름과 달리 그녀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엄마는 그녀에게 매일같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라고 욕하고, 의붓아버지에게 수시로 강간당해 2번이나 임신했다. 프레셔스는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친구 하나 없이 홀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뎌간다. 글도 제대로 못쓰던 프레셔스는 대안학교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일기쓰는 법을 배우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세상의 시름에 힘겨워 하던 한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내려가며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독립을 준비한다. 내 안의 빛을 발견하는 글쓰기와 그 여정.


영화 <프레셔스>의 장면들


이는 영화 <프레셔스 Precious, 2009> 의 내용으로 소설 원작은 <푸시 Pushy>이다. 이는 흑인 여성 작가 사파이어가 할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마주했던 실화를 소설로 만든 것이다.


영화 <프레셔스> 포스터



글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자기 과거의 어두운 지하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과 같다.
어떤 상처나 두려움도 글을 쓰다보면 그 감정 위에 올라서게 된다.
나약함 비겁함이 글을 쓰면서 사라지게 된다.”
- 작가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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