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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1. 2021

달빛천사

슬픔의 기억들에 기쁨을 채워줄 거야

아이들과 주말을 보내다 보니 요즘엔 예능보다도 만화를 더 많이 보게 된다. 투니버스를 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지만 어렸을 때는 나도 하루를 투니버스로 시작해 투니버스로 끝내곤 했었다.


투니버스에서 재밌게 보았던 만화들이 참 많았지만 여러 만화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만화는 단연 ‘달빛천사’이다. ‘달빛천사’는 시한부 소녀 루나가 가수라는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이다.


루나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이루어갔던 과정도 감동적이었지만 아무래도 ‘달빛천사’하면 ost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아이들과 같이 투니버스를 보다 갑자기 달빛천사가 떠오른 나는 달빛천사 ost를 찾아보았다. ‘새벽 공방’이라는 가수들이 부른 ‘달빛천사’라는 노래가 있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니 정말이지 오랜만인 하지만 익숙한 가사들이 들려왔다.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줄 거야 메마른 가슴속을 적셔줄 멜로디 슬픔의 기억들에 기쁨을 채워줄 거야 넘치는 음악 속의 리듬을’


이 노래를 듣고 갑자기 왜 가슴이 뭉근해졌는지 모르겠다. 이런 감정을 너무 오래 잊고 지내왔기 때문이었을까?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해하던 루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슬픔의 기억들에 기쁨을 채워주겠다’고노래하던 루나의 모습이 마냥 감동적이기만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런 루나가 불렀던 노래가 애틋하게 느껴질까.


외로운 사람들만 가득할 뿐 정작 외로운 마음들은 제대로 위로받지 못하는 세상이라 갑자기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노래하던 루나가 그리워진 걸까. 아니면 한 때는 루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그리워진 거였을까.      


어른이 되면서 ‘달빛천사’의 루나는 잊고 지내왔지만 어른이 될수록 더 많은 시간을 달을 바라보며 지내왔다.


많은 사람들이 달을 사랑하듯 나도 달을 사랑한다. 달이 왜 좋냐는 찬이에게 나는 “달은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서 좋아”라고 대답했다. 살면서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해는 나를 어둠 없이 환하게 밝혀주지만, 너무 뜨겁고 환해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달은 언제든지 부담 없이 똑바로, 심지어 편안하게 쳐다볼 수 있다.


한 줌의 어둠도 없이 내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해는 나에게 어둠에 숨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달은 잠깐 그 어둠에 숨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치 지금 내 주변의 어둠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차가운 달이 뜨거운 해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고 그런 달이 조금 더 편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나를 조용히 위로해주었던 건 매 순간 나를 밝게 비쳐주던 해보다는 어둠이 나를 뒤덮었을 때마다 은은한 빛을 비쳐주었던 달이었다. 그 빛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어른이 될수록 무엇 하나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똑바로 쳐다볼수록 겁이 나는 것들도 있었고, 똑바로 쳐다볼수록 싫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어떤 것들은 똑바로 쳐다볼수록 마음이 아파 왔다. 그런데 달은 똑바로, 심지어 오래 쳐다보아도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가 않다.


부담스럽지 않게 나를 다독여주는 달에게 나는 많은 순간 위로받았다.


유독 마음이 쓸쓸한 날, 내 마음처럼 쓸쓸한 모습으로 홀로 떠 있는 달은 내게 불편하지 않은 친구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달이 참 좋다.


날 선 시선들 속에서 뭐하나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던 때 언제나 둥근 시선으로 날 바라봐 주던 달 앞에서 만큼은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있었다.


차가워진 내 마음에 달빛이 천천히 스며들 때면 따뜻함을, 그리고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함을 잃고 싶지 않았던 루나가 여전히 내 안 깊은 곳에서 작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슬픔의 기억들에 기쁨을 채워주겠다’고 노래하던 루나의 마음이 달빛을 타고 전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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