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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1. 2021

구름이 띄어쓰기를 했다

띄어쓰기없이보낼게사랑인것같애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들이 마치 띄어쓰기를 한 것처럼 떠다니고 있다. 이 구름에서 저 구름으로. 저 구름에서 또 다른 구름으로 내 시선도 그렇게 같이 구름 사이에 띄어지고 있었다. 한 칸 띄고 이 구름. 두 칸 띄고 저 구름. 그렇게 구름과 구름 사이의 띄어쓰기를 쳐다보다가 문득 사람과 사람 사이의 띄어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띄어쓰기도 구름과 구름 사이의 띄어쓰기와 같다면 어떨까? 지금보다 포근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띄어쓰기 유지가 필수다. 그 사실이 괜히 씁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한참을 버스 안에서 혼자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하다가 새삼 띄어 쓰인 채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저 구름들이 부러웠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띄어쓰기가 어려운데 저 구름들에겐 띄어쓰기가 참 편안해 보였다. 그 평온함이 부러웠다.

 

며칠 전, 9살 욱이는 학교에서 본 받아쓰기 시험에서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이 틀려와 이모에게 혼이 났다. 나도 욱이 나이였을 때는 세상에서 받아쓰기가 제일 어려운 줄 알았다. 그때는 글자와 글자 사이의 띄어쓰기보다도 더 어려운 띄어쓰기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물다섯의 나는 글자와 글자 사이의 띄어쓰기 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띄어쓰기가 더 어려운 어른이가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 어렵게 느껴졌던 것들은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는 쉬웠던 것들이 이제는 유독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글자와 글자 사이의 띄어쓰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가끔은 어려워하기도 한다) 대신 어릴 때는 하나도 어려워하지 않았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띄어쓰기가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어렵게 느껴진다.

 

찬이와 욱이를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유의 ‘Blueming’을 들었다. 나는 ‘Blueming’의 가사 중 ‘띄어쓰기없이보낼게사랑인것같애’라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게 복잡해지는 것이 싫다. 적어도 마음에만큼은 나 역시 띄어쓰기라는 정돈을 가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이모네 집에 도착했다. 

이모네 집에 와 있는 동안 내게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잠에 드는 순간까지 매 순간을 심심해하고 늘 놀아 달라고 한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주식이’라는 내 부캐를 사랑하지만 서도 ‘주식이’일 때의 나에게도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때로 나는 혼자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찬이와 욱이는 가만히 내 옆에 와 앉아서 본인들도 역시 자신들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핸드폰을 보면서 심심함을 달래는 모습을 보면 막상 혼자 쉬고 싶었던 순간에도 괜히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양가적인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때론 그냥 누워서 쉬고 싶다는 마음에 심심함에 핸드폰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한 적도 있었다. 그냥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알아서 심심함을 달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때로 아이들의 심심함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런데 그 날은 왠지 나에게 놀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각자 핸드폰 게임을 하며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 그 아이들의 모습에 미안함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재밌게 놀아주지 않을 때 핸드폰 게임을 한다. 그런데 또 어른들은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는 아이들한테 핸드폰 게임을 좀 그만하라고 말한다. 이건 모순 아닌가. 아이들에게 핸드폰 게임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내심 아이들이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스스로 심심함을 달래 편하기도 했던 나의 이중성이 너무 치사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아이들한테 먼저 “우리 같이 놀까?”라는 말을 건네 보았다. 항상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먼저 말을 했을 때만 못 이기는 척 귀찮아 하면서 놀아줬었지,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같이 놀자고 말해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놀아줄까?’라는 선심성의 말이 아닌 ‘같이 놀까?’라는 마음에서 우러난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먼저 같이 놀자고 말한 내 말이 의외였는지, 아니면 반가웠는지 핸드폰에 떨어뜨리고 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며 해맑게 “응!”이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마치 내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그 대답에 다시 한 번 미안함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받아쓰기 시험에서 매번 나를 헷갈리게 했던 띄어쓰기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필요한 띄어쓰기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더 정확하게는 굳이 띄어쓰기가 없어도 마음을 편하게 전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띄어쓰기 되어 있지 않은 관계는 조금은 덜 정돈되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그렇게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정답게 붙어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좋다.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나지만 띄어 쓰인 채로 혼자 서 있는 게 외롭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나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띄어쓰기를 잘 지키며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띄어쓰기 없는 관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부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늘 많이 고맙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틈 없이 아이들과 정신없이 놀다 보면 체력적으로는 지칠 때도 있고 사실은 귀찮았던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우울하거나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질 뻔한 순간에도 정신없이 같이 놀자고 하는 아이들의 말에 나는 끝없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아이들을 향해 다시 돌아설 수 있었다. 그렇게 띄어쓰기 없이 내게 다가와준 아이들 덕에, 아이들이 내 시간을 천방지축으로 만들어준 덕에, 나는 오히려 정신없는 하루의 끝에선 늘 고요한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띄어쓰기 없이도 편안한 관계, 띄어쓰기가 없어서 더욱 포근한 관계가 참 오랜만이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 말 만은 꼭 전하고 싶다.

 

띄어쓰기없이보낼게사랑인것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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