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주에 넘어와서 항상 걱정하던 일 중 하나였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거의 두 달에 한 번은 감기로 병원을 가곤 했었다. 호주로 오기 전에 치과에서 썩은이 치료도 마치고 소아과에서 예방접종도 추가로 더 맞히고 필요한 상비약도 충분히 처방받았지만 갑자기 열이 펄펄 끓거나 다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어서 여기저기 물어봐서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도 미리 알아두기도 하였다. 특히 둘째 아이는 코피를 한번 쏟으면 1시간 가까이 정말 양쪽 콧구멍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경우도 많은데 학교에서 코피라도 쏟으면 어찌하나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닥치면 다 어떻게든 되는 것 같다. 일단 호주로 온 지 6개월 동안 아이들은 그 흔한 감기 한 번을 안 걸렸다. 시드니는 아침저녁 일교차도 크고 덥다가도 추운 듯하여 감기가 잘 걸릴 것 같았는데 말이다. 둘째 아이는 한번 열이 38도 정도 올라 어디가 안 좋은지 모르겠어서 해열진통제 한번 먹였는데 바로 멀쩡해졌다. 큰 아이도 마찬가지로 아플 것 같다가 금방 괜찮아지곤 했다. 공기가 좋아서 인 걸까, 아이들이 그만큼 자라서 면역력이 생긴 것일까.
그러다 드디어 병원을 가게 되었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농구를 하다가 공을 잘못 받아서 손가락이 접질렸는데 손가락이 거의 두 배는 붓고 보라색 피멍이 들어 집에 온 것이다. 아이는 아파 죽겠다고 손가락을 굽힐 수도 없다고 하고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하고 있었다. 미리 알아둔 한국인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은 멀리 있어서 소용없었다. 오후 5시 정도면 병원이 문 닫기 때문에 무작정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내 손가락이 다쳤다면 아마도 참았겠지만 아이가 아픈 것은 사소해 보여도 불안하고 걱정되지 않던가.
호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바로 정형외과나 피부과, 이비인후과 이런 전문병원에 갈 수 없다. 먼저 GP라고 부르는 general practice라는 곳을 먼저 가서 진료받고 GP에서 전문병원으로 가라고 해야 갈 수가 있다. 나의 짧은 영어로 병원에서 어찌 대화를 하나 걱정을 하며 먼저 접수서류의 기본사항 작성을 하고 메디뱅크라는 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니 간호사가 진료 후 진료비 납부를 하면 메디뱅크에 제출할 영수증을 주겠다고 한다.
잠시 후 키 큰 흑인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와 우리를 불러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문까지 잡아주신다. 한국과는 사뭇 달라 이 분이 간호사신가 했는데 의사맞으시다. 그리고 정말 자세하게 한 15~20분가량 문진 하셨다. 공을 손등으로 받았니, 손 옆으로 받았니, 손가락과 직각으로 받았니부터 시작하여 아이의 손목부터 자신의 손가락으로 조금조금씩 건드리면서 아픔을 1~10의 강도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아이는 다친 손가락 부분에서 ‘a little bit pain’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딸아, 너 집에서는 아파 죽는다고 병원 가야 한다며. a little bit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이 의사소통을 잘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나름 소통이 잘되었다. 의사는 골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같은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 금세 broken bone이라고 쉽게 설명도 해주시고, 본인도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부기는 가라앉을 것이고 2주일 정도 되면 하나도 안 아플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한다. 그래도 혹시 3일이 지나도 아픈 강도가 똑같다면 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가보라고 정형외과 병원 소견서 같은 것을 작성해 주셨다. ‘그럼 혹시라도 뼈에 문제가 있다면 3일 동안 참다가 가야 한다는 뜻인가요?’라고 묻고 싶었으나 영어가 짧은 관계로 못하였다. 어쩌면 정형외과에 가자마자 엑스레이부터 찍고 보는 우리나라가 과잉진료인 것일까, 만에 하나 부러지진 않았어도 금이 갔을 수도 있지 않은가, 확실하게 괜찮은지 검사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이가 3일을 기다리다 더 아파지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아무튼 결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졌다.
그리고 나오면서 받은 진료비는 정말 놀랄 정도였다. 90 호주달러 정도였는데 한화로 7만 원 정도, 물론 우리가 가입한 사보험에서 진료비의 일부를 환급받았지만, 호주의 병원비는 GP는 기본적으로 100달러 정도 생각해야 하고 전문병원으로 갈 경우 기본 상담료가 약 250달러에 무언가 처치를 할 경우 금액은 더 올라간다고 한다. 대부분 예약을 하고 가야 하는데 대기기간이 한 달은 기본인 병원도 많은 것 같다. 정말 아프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쉽게 병원을 갈 수 있는 우리나라가 좋구나 싶다. 어쩌면 진료비가 이렇게 비싼 것은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호주 사람들은 메디케어라는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 그리고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는 GP와 관계없이 아동 전문병원 응급실로 가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아이는 무탈하니 다행이고 한번 겪어보니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줄어든 듯하다. 호주에 머무르는 동안 제발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