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뿔효과.
조금씩
“제송해요...”
너의 마지막 그 말,
“사랑해요”가 아니었던,
그래서 나도 너무 미안했던.
“제송해요”가 “사랑해요”가 되도록
아주 조금씩이라도 바꿔가겠다고
오늘도 또한번, 다짐해본다.
매주 한 번씩 마주하는, 깨끗하게 비어 있는 흰 종이. 고요한 쉼을 가져다 준다. 오늘은 흰 종이 앞에서 한참을 그냥 앉아만 있었다. 그 하얀 상태가 좋아서 그 위에 검은 글자를 새겨 넣고 싶지 않았달까. 그냥 그렇게 새하얗게만 머무르고 싶었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용기가 약간 필요했던 것 같다. 글자를 지팡이 삼아 마음의 길을 걷는 법을 배우는 이 시간들에 대한 감사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 어줍잖은 솜씨지만 그래도 글을 써보자고 나를 다독이며 불씨를 지펴내 보았다. 오늘 내게 그 불씨가 되어준 것은 11살, 피부가 정말 밀가루처럼 곱고 하얀, 몸집이 제법 커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북극곰이 떠오르는 한 남자아이, 흰곰이였다.
오늘 시치료 배움에는 ‘뿔효과’라는 것이 있었다. 도깨비 뿔처럼 못난 것 한 가지만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나쁘게 평가하는 것을 뿔효과라고 한다고 한다. 특히 외모로 인해 마음의 힘듦을 겪는 분들을 치유의 길에 들어서도록 도울 때 사용하는 이론이라고 한. ‘나는 예쁘지 않아’라는 생각 하나가 자신의 성격이나 직무능력에 대한 불신, 더 나아가서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게 만들어서 삶을 부정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현상을 다루기 위한 용어이다. 흰곰이는 이런 뿔효과 현상이 이미 11살 어린 나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아이였다. 3학년 되면서 전학을 왔는데 전학 온 바로 그 다음 날, 같은 반 아이가 자신에게 “비켜”라고 말했다며 교실 의자를 집어 던져 온 학교에 소문이 났던 그런 아이였다. 아이 말로는 그 날 이후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고. 4학년이 되어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서 짝꿍도 처음 생겨 보았고, 수업 시간에 말 안하고 화장실 간다고 혼난 것도 처음이고, 점심급식 안 먹는다고 혼나본 것도 처음이고, 체육시간에 애들이랑 같이 활동 안 한다고 혼나본 것도 처음이고, 수업 중에 교실 나갔을 때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자기를 찾으러 다녀준 것도 처음이라고, 온갖 당연한 것들에 흰곰이는 내게 다 “처음이예요”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 모든 일들이 처음이었을리 없지만 흰곰이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었나보다. 자꾸만 엇나가고 교실에서 벗어나려고만 하는 흰곰이를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내 앞에 앉혀놓고, 이동시에는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나는 키도 아주 작고, 몸집 자체가 작은데 그와는 정반대인 흰곰이를 항상 손잡고 다니는 모습에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곤 했다. 내게는 작은 내 키와 몸집이 뿔이었고, 흰곰이에게는 자신의 큰 덩치가 뿔이었더랬다. 흰곰이 어머님은 우울증으로 힘듦을 겪고 계시는 분이셨다. 흰곰이는 내게 자주 엄마는 집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아서 집안일과 장보기, 흰곰이 챙기기를 모두 흰곰이 아빠가 다 하시고, 유치원 다니는 여동생이 있는데, 동생 등하원을 포함해 먹이기, 입히기, 씻기기를 모두 흰곰이가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해, 같은 반에 흰곰이보다 훨씬 복잡한 사연을 가진, 가정폭력으로 인해 심신상태가 또래들과 많이 다른, 심지어 환청을 듣는 증상까지 있었던 아이가 있었다. 내면의 어떤 부분이 서로 통했는지 흰곰이와 그 아이가 서로 제법 친해지더니 다행히 그 후로 흰곰이는 교실 밖으로 나다니지 않게 되어 4월 중순부터는 흰곰이의 손을 잡고 다니지 않아도 교실 안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온갖 사건사고가 매일 있었지만 그래도 나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루하루 잘 견디며 서로에게 힘이 되며 잘 지냈던 모양이다. 흰곰이가 스승의 날,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그 큰 덩치와 그 큰 목소리로 혼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애들 앞에서 잘 안그러는데, 그때는 정말 울컥했었더랬다. 노래를 다 듣고나서 흰곰이를 꽉 안아주고 고맙다고 말하며 토닥토닥 해주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반 아이들이 흰곰이를 대하는 모습이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무래도 뿔효과의 반대인 후광효과가 일어났던게 아닐까 싶다. 전학온 다음 날 의자 사건 하나로 인해 흰곰이는 덩치가 크고, 제멋대로이고, 힘이 세고, 폭력적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던 것이 스승의 날 담임선생님 앞에서 했던 독창으로 인해 그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달까. 특히 흰곰이를 불편해하던 여자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도 하고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흰곰이의 후광은 특히 청소시간에 빛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수업이 끝나면 흰곰이 혼자서 교실책상과 의자를 뒤로 다 밀었다가 아이들이 청소 다 하고 나면 또 혼자서 교실책상과 의자를 끌어와 책상줄을 다 맞춰놓고 집에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나중에는 조금만 힘쓰는 일 있으면 흰곰이를 불러대는 통에 쉬는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항상 북적거리는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흰곰이가 보이곤 했다. 흰곰이의 뿔이었던 난폭하고 힘센 덩치 이미지는 흰곰이의 후광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 안에는 나도 있었을거다. 위에 잠시 언급했던, 가정폭력으로 심신상태가 불안정한 아이를 흰곰이의 도움으로 매번 잡아놓고 교실에 앉혀놓곤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발작에 가까운 히스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냈는데 나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몇 번이나 옆 반에 계시는 남자선생님이 오셨지만 이제는 흰곰이 덕분에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놀랍게도 흰곰이는 그 아이의 히스테리를 심드렁하게 잘 견뎌내주었고, 심지어 아이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그 아이에게 잔소리도 하고 등도 두들겨주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며 반 안에서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우리를 다스릴 수 있게 되자, 2학기에는 그 힘든 아이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시장놀이도 하고, 없던 체육시간도 만들어서 반 아이들끼리 야구대회, 피구대회도 하며 정말 시끌벅적하게 일 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아이들에게 흰곰이는 선물이었던 거 같다. 지금 이 순간, 흰곰이를 떠올리며 뭉클한 감사가 꽉 차오른다.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일 년을 다 보내고 아이들에게 마지막 생활통지표를 나눠주며 작별인사를 하는 날이 왔고, 흰곰이의 담임으로서 마지막으로 한껏 안아주고 5학년 돼서도 지금처럼만 잘 지내라고 말해주었던 것 같다. 그 다음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을 겪었다... . 아이들 다 보내놓고 지쳐서 잠시 넋놓고 앉아있다가 교실정리하려고 일어났는데 칠판에 흰곰이가 이렇게 적어놓고 간 걸 발견한거다. "선생님, 제송해요"라고...... . 그 와중에도 맞춤법 틀리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몇 번이나 지웠다 적었다 한 희끗한 얼룩들을 잔뜩 남겨 놓고 꾹꾹 눌러 써 놓은 글씨를 보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왔더랬다. 에휴, 이 녀석아,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 아이가 많이 밝아지고 명랑해졌다고, 일 년간 너무 멋지게 잘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징하게 힘들다’ 하면서도 내심 기특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는데... . 아이는 그 뿔, 완전히 녹여내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이의 그 마지막 말이 너무 속상하게, 너무 아프게 내 안에 닿아서 그만 울고 말았더랬다. 그때는 몰랐었다. 지금처럼 상담이나 심리학 공부를 했던 때도 아니었다. 아이의 뿔은 여전히 내면 어딘가에 꼿꼿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때 뿔효과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때 반대로 후광효과라는 걸 좀 알았더라면... . 그래서 그 후광효과가 번쩍번쩍할 때 흰곰이의 그 뿔들, 조금이라도 마음에서 녹여내주고 없애줄 수 있었더라면... . 그렇게 할 줄 아는 지혜로운 교사였더라면 흰곰이의 마지막 인사는 ‘죄송해요’가 아니었지 않았을까... . ‘고마워요’나 ‘사랑해요’ 혹은 ‘올 해 4학년 너무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라던가 그런 말들이었지 않았을까... . ‘죄송해요’라는 말이 그렇게까지 아픈 말인 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 후부터는 아이들이 ‘죄송해요’라는 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욱해서는 그 말을 억지로라도 굳이 고쳐주게 된다. 아이는, 아니 인간은 자신의 어떤 모습 하나로 인해 아주 쉽게 자기 자신 전체를 못난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자신이 못났다 여겨지는 면은 전체를 보았을 때 실은 아주 작은, 얼마 안 되는 모습일 뿐이라는 걸 알고 인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조차도 그렇지 못한 걸... . 오늘에서야 그런 용어들을 배우고 글을 쓰고 사용해보면서 겨우 훈련해 나가고 있는 걸... . 자기 존재가 누군가에게 죄송해지는 마음이 드는, 그 어둡고 무겁고 시린 가슴을 이제야 머리로 차갑게 분석하고 읽어내어 다시 따뜻하고 포송포송하고 가볍게 만들어내는 훈련을 40이 넘어서야 겨우 해보고 있는 걸... .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아주 조금씩이라도 배워나가고 연습해나가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배움과 깨달음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의 시를 적어 보았다. 자신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자신에 대해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씩이라도 바뀌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았다. 뿔효과와 함께 배운 조미자의 <슬픔에 빠진 나를 위해 똑! 똑! 똑!>이라는 시의 구절을 하나를 남겨본다.
별빛 달빛 일렁이는 호숫가 옆
내 작은 집
나의 슬픔이 남겨질 자리.
그곳에서
다시 웃었어
지금 당장 이 순간 우리는 별빛 달빛 일렁이는 아름다운 호숫가 옆으로 순간이동할 수는 없겠지만 마법처럼 그것을 해주는 시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동한 마음을 조건없이 자유로이 풀어낼 깨끗한 흰 종이와 연필도 우리에겐 있다. 그 아름다운 것들에 기대어 오늘도 이렇게 어딘가 남겨져 있었던 내 작은 슬픔 하나를 풀어내 다시 배움과 성장으로 바꿔내는데 성공했다. 여전히 아직도 너무 멀고 길기만 한 것 같지만, 정말 끝이 없는 것만 같지만 그래도 이 감사함에 힘입어 다시 또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보려 한다. 오늘도 이렇게 감사하다. 그리고 이 감사가 계속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