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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삶

- 시를 쓰며 자신에게 장하다 말해주기

by 서로


숨 삶

-서로


숨에는

선악이 없다

숨일 뿐


삶은

사는 거다

삶일 뿐


지금을 충만히

살아 내었다면

그걸로 되었다


나는

그대가 장하다







매일 먹는 약이 있다. 2017년도부터 먹었으니 8년 꽉 채웠고, 올해로 9년이다. 작년 겨울, 병원에서 이 약을 이렇게 오래 먹은 케이스가 없으니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여러저러한 이유로 장기복용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염려가 된다는 의견이었다. 새끼 발가락의 발톱보다도 작은 알약 하나. 그게 다인데. 그게 나를 8년이나 살아내게 해주었는데. 그런데 병원에서 이제는 처방해주지 않겠다니. 그 약만 믿고 살아왔는데. 의사는 약 대신 수술, 혹은 비슷한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이는 영양제 같은 뭔가를 추천해 주었다. 6개월에 한 번씩 가서 타다 먹은 약은 3만원 정도였는데 약은 아닌, 영양제 비스무리한 이름을 가진 그것은 1개월 어치가 10만원이 넘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하기엔 너무 젊고, 그동안 약이 무척 잘 들었으니 이것도 잘 들을 거라고 바꾸어 보자고 했다. 나는 약 복용 전에 얼마나 끔찍이도 아팠었는지 여전히 너무도 생생했고, 도저히 못 끊겠다고 말하며 다시 6개월 어치를 처방받아 왔다. 약을 받아 온 후, 혹시 그래도 8년이나 먹어 왔으니 좀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1월과 2월, 일을 쉬는 동안 약을 먹지 않아 보았다. 며칠은 괜찮았는데. 8년 전 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일상 생활을 해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몸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2월 중순, 어쩔 수 없이 받아온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좋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을 먹지 않았던 두어 달이 몸에게 무척 큰 혼란과 영향을 주었던 건지 예전처럼 약이 효과를 내지 못했다. 주어진 일들을 다 해내긴 했지만 온몸이 퉁퉁 붓고, 지독하게 아프고, 끔찍이도 뜨거웠다. 정말 힘들었고, 우울이 덮쳤으며, 몸과 마음과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하지만 한 가지,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우울 삽화가 아주 잠시, 짧게만 왔다 갔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랐다. 우울이 시작되는 순간과 끝나가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인지할 수 있었으며, 그 알아차림은 내가 나를 돌보고 다스리도록 이끌어 주었다. '되는 구나. 정말로 되. 아파도, 힘들어도,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라는 아주 조금의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 보기엔 어떻게 저러고 사나 싶은 그런 엉망진창인 삶일지도 모르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끝까지 견뎌내며 살아갈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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